2007년 10월 6일 토요일

아름다운 집


이런 집에서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내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다.
지금 그애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옛날 내 소망이 이거였거를..내 꿈은 소박하고. 단순했는데.
이제는 그 꿈마져. 정녕 꿈으로 남아야만 하나.
아들아~~`내 아들아..사랑하는 내 아들아.........
보고싶고...사랑한다.....이 목숨 다하는 그날까지.............

이상은


너무도 사랑스런 여인이네..어느새 이쁜 아가씨로 변했을까요?

크라운 제이

2007년 10월 4일 목요일


이 아기는 너무 천사같은 모습이였기에 내가 스크랩을 했다.
우리 아기들도 저렇게 천사처럼 밝고 이쁘게 자랐수 있었는데. 부모들에게 상처를 받았고. 버림받았다는 이유로 멍들고. 온 마음이 고통으로 이그러진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우리에 많은 천사들....
울 시연이도 부디 아픔이 없기를 바라고 또 바라지만. 과연 내 소망되로 될까....

윤주희


이 숙녀분의 이름은 윤주희 다. 참으로 힘든 소녀 시절을 보냈고. 양 아버지에게 성 추행을 당하다 시피 살았고. 부모에게 버림 받았다는 충격으로 음식 거부증과 거식증으로 참담한 생할을 했으며.
꽃 같이 활짝 펴야할 시기에는 음식으로 고통을 받고. 지금은 나 나았으며. 한국에서 그일를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사람은 지금 네덜란드 로 입양을 간 숙녀다. 어린나이 즉 6세에 네덜란드로 입양을 갔다가 지금은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참으로 슬프고 고달픈 인생을 산 증인이고. 얼굴을 앳띠고 가녀린 숙녀인데..

2007년 9월 18일 화요일

보고싶은 메타

사랑하는 메타

어느 덧 너와 헤어진 것이 여러 달이 흘러 갔구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부모님은 찾았는지. 무척 소식이 궁금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번역도 부탁하기가. 부담스럽고. 그러네.
하지만 마음은 결코 변치 않을거야.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거라 생각하니. 걱정은 덜 된다.
너에게 보낼 편지는 여기에다 쓴다.
너가 그래도 한국에 있을적에는 옆에 있다는 것이 좋았는데.
아쉽다. 좀더 잘해주지 못한것이.
내년에 한국에 오면. 이 엄마가 좀더 따스하게 반겨줄께..
사랑하는 딸아. 그립고 보고싶다.
널 사랑하는 맘 알아줄꺼지..
우리 서로 사랑하는 마음 변치말자..

2007년 9월 7일 금요일

일기

우리 아이들고 헤어질적에 써논 글이 있답니다..

그것을 조금 올리고싶네요...



1987년11월20일...

내일이면, 기약없는 이별이,시작된다,,영원한 이별이 될지.잠깐동안 이별이될지....

아이들과 긴 이별을 과연, 난 견딜수 있을지~모르겠다.여기에다 기록을 하고 싶은데. 생각이 ,,생각이 나지를 않는다. 하나.간절한 소망이 있다면, 여기서 시간이 멈추워 버리면 좋겠구나...

나는 견딜수 있을까..돌아서는 아이들에 뒷모습을 바라보며 울지않고, 견딜수 있을까..

시간이여, 멈추워다오,나를 위해서 시간이여....

.

괴롭구나, 계속담배만 피워본다. 어지럽다 토하고 싶다. 피우지도 못하는 담배을 한갑씩이나 태우니.. 속이 울렁거린다..

주님 이죄많은 여인을 용서하소서, 불쌍하고 가여운한 여인을 굽어 살피소서,주여

짐승들도 제 새끼 귀여운줄 아는데. 하물며사람인 내가 사랑스런 내 자식을 멀리보내야하는심정,

칼로심장을, 도려내는이 아픔을,,이세상 어느누가 알아주겠읍니까....하지만 주님만은. 제에

진실을 알아주시겠지요, 아이들을 보내야만 하는이심정을....심장이 터질것 같은 이심정을...온 몸이 산산히 부서지고, 이 마음이 갈기갈기 찟어지는 것같은이마음을 요...



내일이면, 정말 가는구나, 내곁을 떠나는구나. 기약도 없는 그기약없는 만남을 위해, 난 무엇을 하면.

기다려야 하나. 두렵다.욱이야~현이야~사랑한다.이세상에 무엇을 준다한들,너희들과바꾸겠나마는..난 너희들을 보낸다..너희들에 미래을 생각하면, 엄마가 참아야 하기에..좀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것만이. 지금엄마가 해야할 일이기에,아픔을 참고 보낸다.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너희들을 보낼수 밖에 없음을 용서해다오. 내 무릅끓고 용서을 비마..



귀여운 내 아이들..이엄마에 심장을 준다해도, 아깝지않은 내 사랑스런아이들..이제는. 어떡하지.

너희들을 보내고 나면 그때부터엄마는 지울수 없은 상처을 가지고, 죄많은 길이 시작되겠지.....

밤새도록, 너희들 잠든모습을 바라보며애기한다..

잘가라욱아... 잘가라현아....부디부디 잘 자라거라....밤새 울고,또 울어도 소용이 없음을 잘알고 있지만, 그래도 엄마는 바보처럼운다..



사랑하는 욱아.현아. 이것은 너희들과 헤어지기전날이란다..

지금엄마는 눈물이 앞을 가르는구나. 지난날이.너무나 아프고, 슬퍼서, 목이 메이는구나...

아직도 난 그날에 모든일들이 가슴속에 남아있단다..

내 머리속에...내 가슴속에.....내 피부에..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어.

내 어찌 그날을 잊을수 있겠니...지금까지 살아온 날중..최악의 날을 어찌 한시라도 잊을수가 있겠니...

가슴을 울고 있으면서 웃어야 하는 이 마음을...............

밤이새도록,너희이름을 볼러본단다.



꿈을 꾸었나보다, 눈물을 흘리며 그것도 큰소리로 현이를 부르며 잠에서 깨었다...

현이와 입마춤을 했다. 꿈속에서 욱이는 빨리가야 한다며뛰어갔다...

왜 이리 가슴이 뛸까..생생하게 떠오르는모습들...귓가에 울리는목소리가 내가슴을 할퀴고 지나갔다..가슴이 찢어지는것 같구나..



욱이한고 현이가 찾아왓다, 친구들하고,형뻘되는아이하고. 찾아와서, 반가운나머지 지금 어떻게 자내냐는 나의 질문에. 밥은먹었냐고 물어보니. 밥은 흙탕밥이란다.

오늘도흙탕밥을먹었다고,하며 날 쳐다본다.왜,흙탕밥이야 하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다며 운다..

그래 형뻘돼는 아이에게 물었다.밥이 더럽다는 것이다.



어떡하지..그럼 이엄마가 너희들을 찾아와야 겠구나하니까. 형되는아이가. 여기는 한번들어오면

다시는 나갈수가 없다는것이다. 너는 언제 왔야고 하니2년되엇다고 하면서 지금은 중학교 2학년이라고한다, 나는 현이를 쳐다 보았다. 현이가 초쿄파이를 사랄라기에, 수퍼을 가는데.



아이들이 간다고하면서, 나간다..난 가지말라고 붙잡으니까,,늦기전에 가야된다고, 서둘러간다.현이는 빨리 사달라고 운다.초코파이을 사주니까, 현이가 막 먹고 먼저간 아이들이 현이보고 빨리오라고손짓을 한다...현이가 엄마 나 그만 먹을래그곳에 가면혼난다하면서, ..

..

내가 돈을 주니. 안가져 간다며 도로준다... 다음에 오며는 사달라고 하면서. 그래 엄마하고 입마춤을 하자 하고 입을 마추며,,내가 울었던것이 큰소리가 되어 아이들을 부르며잠에서 깨어났구나...



아이들이름을 부르면서, 미칠것만같다..어떡하지. 우리아이들 불쌍해서.어쩌지. 어쩌면 좋지..우리 욱이 현이 불쌍해서,어떡하면 좋지. 불쌍한우리 아이들 욱아 현아, 우리애들 가엾어서어떡하지..

.

아빠, 엄마,우리 아이들 어떡해요,잘 지내야 하는데.어떡해요,,,불쌍해서...주님 우리아이들, 잘지내야 하는데...밥도 흙탕밥이고,,먹는것도 눈치를보며는 가엾어서어쩌죠,,,아 어떡하나.



이 터지는가슴을, 이찢어지는고통을 ,,나에고통은 참을수가 있는데. 우리아이들이 받아야 하는 고통은 참을수가 없구나..보고싶다. 내 눈으로 확인하고싶구나..아이들을 데려오고싶다... 당장이라도,,죽을 먹이더라도, 내가 키워야 하는데.엄마가 잘못 생각했구나..아가들아..



미칠것같구나., 가엾은우리아가들, 욱아, 현아.너희들이 잘자라야 하는데.어쩌면 좋을까...

주님, 주님에 은총이우리 아이들에게 내려주소서,,,신에 가호가함께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주여 벌을 내리시려면, 저에게 내려주시고..우리 가엾은 아가들에게는 은총이충만하기를기도드림니다...울고 또 울어도, 이가슴을 어떡할수가 없어, 죄많은 절 용서하지 마시고. 우리 아가들은, 주님께서 함게해 주셔요,,,부디 잘 자라도록, 축복하시고, 굽어살피소서,,,



진심으로 주님께빕니다. 제발 이 가엾은 죄인을 굽어살피소서,,,

향상 어느곳이나. 우리 아가들이 가는곳에는, 주님께서 함게하시길 엎드려 기도 드립니다....

통곡을 합니다..제발 제발...그애들을 주님께서 지켜주세요....

그애들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힘들지 않도록.....어루만져 주시고..이 엄마가 못다한. 사랑을 주님께서

베풀어 주세요......밤이 새도록 기도 하고 또 기도한다..

내가 할수 있는 것은 마음속으로 기도 밖에는 없기에........................................



사랑하는욱아,현아.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내 아가들아. 이젠 울지말자..행여 슬퍼도 울지말자..우리 약속하자.

더이상은 울지 않기로,,,,,,

삶7

동욱아. 동현아.

오늘따라 너희가 그립다..

문득 하늘을 보니. 눈시울이 뜨겁구나.

엄마가 지금 수기를 쓰고 있지만. 너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아서 온통 뒤죽박죽이다.

그냥 우리 아들과 산 날을 적어볼까.



엄마는 널 평택에서 널 낳고. 얼마 안있다가.서울에서 살았던것 같아

갈곳이 없어서 엄마가 처녀적에 일하던 곳에 몸을 위탁을 하고. 널 데리고 또 남편과 함께 사는 조건으로 그곳에서 일을 한것 같다.

그곳에서 엄마는 외근을 하고. 직원들 밥도 하고. 그랬던거야.

너 는 온 마당을 기어다니고. 엄마는 일을 해야하고. 그러다가. 그곳도 문을 닫는 바람에. 갈곳이 잃어버렸단다.

그 건물 주인에게 사정을 하고. 여관을 들어가고. 아빠가 널 돌보기로 하고. 엄마는 술집에 나가기로 했다.

근데 그 술집주인은 엄마 친구였어. 그때 엄마 나이가 21살. 넌 막 돌을 넘겼지..

엄마는 젓이 불고. 너는 배가 곱파서. 울고. 근데 엄마도 그곳에서 일을 하지못했어.

친구가 반대를 했거든. 난 다시 너 곁으로 돌아왔다.아빠도 열심히 일을 하기로 약속하고.

근데. 얼마 못가서 아빤 다시 약속을 깨었지만.

적어도 그때 그랬다.

한달후에 우린 어디로 갔을까.생각을 해 봐야 할것 같구나.

엄마 기억을 잃어버려린것 같구나. 삶의 한쪽을 .....너무도 버거운 삶의 무게 때문에.

삶6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인생이 너무 힘들고 괴롭지만. 그때가 제일 그립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한 지난날들이 너무 그립고.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사는 것이 힘들었지만 고통은 없었서든요. 그리움도 없었고. 아픔도 없었고.

열심히 살면 되는 거였잖아요..



그렇게 또 세월은 흘러. 가고. 일년이 되었을적에. 아이아빠한테 외국에서 더 있으라고. 했지만.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또 다시 생할은 어려워 지고. 일년동안 모은돈이 없으니. 한달만 놀아도. 힘이 들지요.

아이 아빠는 모든 한가지만 하는 것이 아니고. 늘 다른것에 마음을 두고 산답니다.



이것을 하면. 저것을 하고싶어 하고..저것을 하면 이것을 하고싶어 하고.

허나 마음은 착한것 같았습니다.



이글을 쓰는 저도 확실하게 그사람에 성격을 몰라요..

내 기억속에 조차 희미해 지고 있습니다.. 그냥 불쌍한 것 그리고 치사하다는 것. 야물지 못한것..등등.

별로 기억이 나지 않아요.



오래전 내 마음속에서 지워 버렸서 그런가 봅니다.



그러다가. 저가 그 옛날에 다니던 직장에서 사람을 모집한다고 하기에. 전 찾아갔습니다.

그곳은 등나무 로 바구니등을 만드는 곳이였지요.



외조. 라는 말 들어 보셨나요.



외조는 밖에다가 부업을 주는 것입니다. 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고. 만든 물건을 수거 하는 것이 였지요.

조그만한 하청 공장인데다가 사람도 사장과 두 세사람 정도 였어요.



그사람들을 밥을 해주고. 일도 하고. 우리 네 식구 밥을 먹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다른곳에 직장을 다니고. 전 그곳에서 일도 하고. 여러가지로 해야 했지요.



우리 큰아이가. 돌전에 있었던 일인가 보네요;..

그때 전 그 공장에서 일를 하고. 아이는 온 바닥을 기어다니고.. 흙을 먹는지. 도 모를 정도로 컸어요

그나마 그공장도 문들 닫는 바람에 우리 식구는 갈곳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그 땅 주인을 찾아가서. 사정을 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갈곳도 없고. 날도 추워서 그러니 봄 까지만 살게 해달라고요.

그 공장이라는 곳은 넒은 땅에 울타리를 치고는 여러 공장이 함께 세들어 있는 곳이였습니다.



그 사장이라는 사람이 하는말이. 여긴 개인적으로는 있으면 안되는 곳이고. 또 그곳은 다른 사람이

세들어 왔으니. 안된다고요/



하지만 전 매달렸습니다. 살려달라고요.

그러면. 여관을 얻어준다고 하셨습니다. 한달동안 여관을 얻어줄테니. 그곳에서 머물라고요.

너무도 감사하고. 고맙고. 그랬습니다/



내 생전에- 잊지못한 그분을 전 한번도 찾아뵙지도 못한채. 이렇게 지났습니다.

그곳이 어딘지 모르니 까요..



온통 정신이 없는 사람처럼 하루 하루를 급급하게 살아갔으니 말이죠...

당장 방은 해결 되었지만. . 먹을것은요.. ,아이야 젓 먹이면 되지만 우린......

...

정말 챙피하고 짜증이 났어요. 그런데도 그사람은 너무 뻔뻔해 보이고..

전 집을 나와서 친구가 경영하는 술집으로 갔습니다. 나도 일을 할수있도록 말이죠



그 날 저녁에 남편에게 말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젓은 불고. 술도 못마시는 내가. 그곳에서 일을 한다는 용기는 어디서 났는지...ㅎㅎ



젓이 불어서 내가 울고 있으니..친구가 돈을 주면서 여기서 일을 하지말라고 하더군요.,

전 여기서 일을 할수 없데요.



그런 곳에 널 두게 할수는 없다고. 다른곳으로 알아보라고 하더군요..

왜 바보처럼 그곳에서 일을 하게 해달라고 못했는지..왜 그때는 그런 곳은 더럽다고 생각했는지.

지금도 그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 생각이 난다고 합니다.



그 친구는 지금 인천에 살고 있어요...

삶5

그렇게 살다가 우린 서울로 이사을 했답니다..

아이 아빠는 사우디로 가고. 우리 삼모자는 어렵게 집세 한번 제 날짜에 주지도 못한채 ...

그당시 아이들을 이끌고. 혼자서 이리 저리 이사도 참 잘 다닌것 같습니다.

아이 아빠가 없는 사람처럼. ..

그러다가 어디로 이사를 했을까...하도 이사을 많이 다녀서 헷갈린다.

아마도 서울로 이사을 한것 같다.

아이 아빠가 없으니. 내 고향인 서울로 온것 같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려고 했지만 아이들이 어리고. 지금처럼 놀이방 시설도 없고. 난 아이들을 기를수 밖에는 할일이 없던것 같다.

단 부업을 하면서..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난 하루도 놀아본적이 없다.

늘 내 손에는 일감이 들려 있었습니다.

안해본것이 없을 정도죠..미싱. 샤시. 구슬달기. 꽃 만듥기. 실밥 자르기. 서울에서 생활은 힘들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었지요..

아이 아빠가 외국에 갔으니. 참고 견디다 보면.. 우리도 잘 살것 같은 기분이 들었답니다.

어느날. 작은 아이가 아팠습니다.

병원에 가야 할 돈이 없었지요.돈도 없고. 사는 것이 정말 사는 것 였을까요.

보건소에서 그때 불임수술을 하면. 아이들의 병원비도 무료고. 돈이 나온다고 권유를 했습니다.

당장 난 돈이 필요하기에. 수술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보건소를 찾아갔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수술를 하려고 누워 있으니 만감이 교차 되더군요.

그때 내 나이..22세..정말 꽃다운 나이죠..

그나이에 난 불임 수술를 할려고 하니..참 으로 우습죠..

복강경 수술이라는 것을 하고 아이들 손목을 잡고 집으로 오면서. 과연 내가 무슨생각을 했을까요?

집으로 오니 먹을것 조차 변변하지 못하고. ..............

전 참으로 억척으로 일을 했읍니다.. 희망이란 단어를 생각했어요.,

이다음에 우리애들과 잘 살고 싶을 뿐이였고.아무런 욕심도 없었는데..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삶4

삼천포에서 아이들과 생활을 하게 되었다.

참으로 질긴 고행이였던것 같아서. 어디서 부터 써야 할지 지난날을 돌이켜 볼적에.

아마 아이들이 없었다면. 짧은 생애를 마무리 했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힘들고. 괴롭고..외롭고..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온것 같구나.

이번에 사촌 오빠가 하시는 말씀이

내가 아이들과 연락이 닿았다고 하니..축하한다고. 넌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말씀을 하시더군요.

무섭고 두려운 길고 긴 터널을 외롭게 견디면서 그래도 나쁜 맘 안먹고. 열심히 잘 살았다구요.

그래서 복 받는 거래요.

정말 그럴까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지고. 전 어르신들이 말씀을 하실때. 가슴이 뻥 뚤렸다고들 하실때......그말들을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근데. 그런말들이 사실이라고 전 느꼈습니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난후..그 해 겨울 전 느껴야 했지요

매서운 바람이. 내 심장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것을요...

추운줄도 모르고. 거리를 방항하는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낯선 곳에 혼자 동 떨어져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했지요.

아마 . 전 아이들을 보내면서 내 마음과. 정신과 모든 것들을 함께 보냈나 봐요..

한동안 정신을 차릴수가 없었답니다.

넋이 나갔고. 멍하니.....하늘을 쳐다보곤 중얼중얼. 미친 사람이 따로 없었으니...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살려고 밥을 먹을적에는 눈물이 흐르더군요,

내 자신이 비참하고...한심하고...너무도 환멸이 느껴.....울고 또 울고. 눈물이 마를때까지.....

내 몸속에 있는 수분이라고 하는 것들은 다 눈물로 나왔어요...

제가 선택한 길이였기에........누구도 원망을 할수도 없었고.. 말할수도 없었답니다.

그러니 우는 수 밖에는 . 그당시 제가 할수있는 것이라고는 우는 것 밖에는 없으니까.................

하나님께 용서을 구할수도 없었어요..

너무 죄가 커서. 어떡해 용서을 해달라고 감히 말할수가 있겠어요............

삶3

그렇게 큰아이를 임신을 했는데도.우린 먹을 것이 없었다.

그사람은 직업도 없는데다가..나이도 어리고. 그때 나이가 21세..후후.

난 19세..이렇게 어린 엄마 아빠가 되어가고 있었다..

난 임신한 몸으로 직장을 알아보려고 다녀야 했다..다행이 미싱을 할줄알아서. 취직을 했다.

하지만 당장 먹을 것이 없기에..가불을 말도 못 꺼내고..함께 일하는 언니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가게에서 외상을 얻어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날보고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면서 빵을 사주었는데..난 그 빵을 먹으면서 얼마나 울었을까...

목이 메이고..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서 눈물이 앞을 가려.도저히 빵을 먹을수가 없었다.

저녁에 쌀을 이고 오는 도중 신발이 다 낡아서 떨어져 버렸다.

한쪽 신발은 신고..나머지 한쪽은 들고 머리에다가는 쌀을 이고..하지만 그때는 그래도 희망이 있었다.

그사람이 취직을 하고 우리 애기 잘키우면서 살거라는 희망..........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어긋나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적어도 그때는 후해하지 않았다.

난 취직을 해서 일을 하고 애기 아빠는 직업훈력소에 서 배관공 일을 배웠다..

자격증을 따서 화력발전소에 취직을 했으며..우린 서울을 떠나 평택으로 이사을 했다.

큰 애 고향이 평택이다..평택에서는 그래도 행복했다.

아기 아빠는 일을 해서 월급을 받아오고..물런 몇 만원이였던가..아님 몇 십만원 이였던가..기억은 나지 않치만.. 그래도 우린 열심히 일을 하고. 애기도 낳고.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다.

그 자그만한 행복도 오래가지 못하고. 애기 아빠가 다른곳으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

난 그곳에서 동욱이랑 함께 지내고 아기 아빠가 다른곳으로 갔다.

한달 두달 몇달이 되지 않고 또 직장을 옮기는 일이 생겼다.

그당시 그것이 병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난 단지 혼자서 모든것을 해결하고. 놀고싶어도 놀지 못하는 그사람이 불쌍해서 모든것을 다 이해하고.싶었다.

그래서 참고 또 참고.. 나중에. 그사람 형도 있었는데. 우리가 살림을 차리고 사니까.

찾아왔다..그래서 우린 세사람이 함께 살수 밖에는 그 형도 갈곳이 없는 사람이라. 형이 술을 많이 마셨다..그리고 동생내외가 다정하게 사는 꼴을 보지 못했다..

술을 마시고. 주정을 하고. 동생하고 싸우고.늘 그런식이였다.

그러다가 우린 삼천포로 이사을 했다. 그곳에 발전소가 있다기에...

그때는 동욱이 동생을 가지고 있었는데..그애 고향은 삼천포..후후후

거기서 둘째을 낳았는데. 조산소에서 애기를 낳고. 집으로 왔는데. 큰 아빠라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동생과 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누워 있는 방까지 들어와서는 아이들을 때리려고 했다..난 깜짝 놀라서 아이들을 들쳐업고. 안고.

거리로 뛰어나갔다..

갈곳도 없고 낮설고 타향에서. 비가 내리고있었고..공원 벤치에서 앉았있었는데.

교회 전도사님이 지나가다가. 보고서는 날보고 들어오라고 한다..

그곳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지만 집도 궁금하고. 해서 아기들을 그곳에 잠시 맡기고 집으로 와서 보니.

형이 석유를 뿌리면서 불을 질려버린다고 협박을 하고있다.

너무도 무섭고..겁이나서 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전도사님이 모든것을 해결해 주시고 형은 집을 나갔다..

그래서 조금안정을 찾으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그때 또 다시 직장을 옮기게 된다.

이번에는 충남 보령..지금은 차을 타면 금방 가지만 그때는 보령을 찾아가려면. 차도 몇번 타고. 배도 타고 가야 했다.

배는 장항에서 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난 그냥 삼천포에서 살았다..이렇게 늘 떨어져 살았던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아기 아빠가 싸움을 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한다.

그렇게 차을 타고 배을 타고 찾아갔더니.. 너무 한심해서 말도 안나온다.

그리고 나서 이번에는 외국으로 간다고. 설치고 나선다.

외국가면 우리는 무얼 먹고 사냐고 ㅁ하니. 또 한 갈 돈도 없다고 하니.

어느새 우리 아버지를 찾아가서 돈을 달라고 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래도 친정 아버지는 외국으로 가면 좀 낳지 않을까 싶어서 돈을 만들어서 외국으로 보냈고.

난 그곳 삼천포에서 쥐포을 말리면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

당장 집셋돈이며...공과금을 내야했기에.. 동욱이는 4살..동현이는 1살..난 현이를 업고. 하루종일 바다바람을 맞아가면서 쥐포공장에서 일을 했다.

삶2

네 전 아이들을 보내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제가 어린시절은 부유하지도 . 않았고요.. 어린시절이 행복하지도 못했지요.

전 두살적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밑에서.. 그리고 오빠들 밑에서 자랐습니다.

막내로..

초등교육도 받지 못했고..떠돌이 생할. 아버지가 절 데리고 이리 저리 떠돌이 생할을 했고.

하루에 밥을 먹을곳도 없어서 굶기를 밥먹듯이 한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는 우리나라 인심이 좋아서 아버지는 약주를 전 밥 한끼 정도 얻어먹을수가 있었답니다.

아마 그때 내 나이 9홉살적이였던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부산에 내려갔는데. 부산에는 내 큰 고모가 살고 있었다.

난 처음보는 큰 고모지만. 그 고모를 붙잡고 아버지 따라서 안간다고 울고 불고 했다.

너무도 철없고. 어려서 그랬을거다..아니면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너무 힘들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근데 그러한 행동을 한것 때문에..난 더 큰 고통을 당해야 했다.



큰 고모네는 나랑 같은 동갑아이가 있었고..그 위에 언니가 있었다..물런 오빠도 있었고..

동갑아이에게..난 설움을 가슴에 맺힐정도로 받았다.

고모는 한복을 만드시는 일을 하시고..난 식모처럼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로. 밥을 먹을려면..사촌이..못 먹게..했다.

밥 상밑으로 내 허벅지을 꼬집고. 난 울지도 못하고. 밥을 먹지도 못하고..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밤이되면..부산 바닷가를 얼마나 엄마를 부르면서 울었는지..아버지도 부르고.왜 아버지를 따라서 안갔는지..너무도 후해을 했다..



그렇게 일년정도 보내고..내 큰 오빠가 날 데리고 왔다..

우리 식구는 다시 합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일년을 넘게 눈치밥을 먹다보니..눈치만 보는 날 아버지는 보시고..많이 우셨다..

항상 나가서 얻어맞고 들어오는 날 보고 아버지는 술잡수시고는 우시는 거 였다..

그렇게 나는 성장을 했고.. 그러던 어느날 우리 아이들 아빠를 만났다.

그사람 은 고아였고..갈곳이 없는 사람이였다.

왜 그렇게 불쌍하게 보이던지..난 그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고 사랑인줄 알고 동거을 시작했다.

집에서는 반대를 하고..엄마 없이 큰 내가 좋은곳으로 시집가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미 난 임신을 했고..그것이 내 큰 아들이였다..

삶1

우선 전 아들 두명을 멀리 아주 멀리 프랑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왜 냐구요?

입양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그애들이 9세...6세...이렇게 다 큰 아이들을 머나먼 이국땅을로 보냈습니다.

생각을 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터질것 같고 힘든 시간과 고통속에서 몸부림 치면서 하루 하루를 보냈답니다.

막연이 아이들이 크면 만날거 라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되 새기면서 실날같은 희망을 안고

삶의 무게을 지탱하면서 살았지요..

그러던 어느날 전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만나고 나니 모든것이 우리네 하고는 너무도 틀려답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다시한번 아이들을 버린 천벌을 받나 봅니다.

전 맹세코 아이들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단지 잠시 헤어져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버거운 인생을 줄이고 싶었다고 감히 말하겠습니다.

근데 그것은 제에 생각이였답니다..

아이들은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그애들 역시 이중으로 고통을 받았으니까요.............

하늘이시여.....아~~아.. 하늘만이 그 당시에 모든것을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지금부터 생각하고 싶지 않는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렵니다..

2007년 9월 6일 목요일

내 이야기.

카페에다가 쓴 글을 여기에다가 올렸야 겠습니다.
동욱아. 그리고 현아.
엄마는 그렇게 너희들과 살았단다. 동욱이가 어렸을적부터. 엄마가 해준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늘 고생만 시켰지.
그러다 보니. 아빤 을지로에 있는 인쇄소골목이 있었다.
그곳에 배달하는 사람으로 취직을 했고. 그곳에서는 하루 하루 \일당을 받았다.
일당을 받아서 하루 하루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면서. 널 키우고 있었다.
집세을 못 주어서. 밖에서 문을 잠그고. 방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던 적도 있었고,.,.
아빠 친구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갈곳이 없다고. 우리 집에서 잠을 자고. 물런 자는 것 까지는 얼마든지 참을수가 있었는데. 밤이 되면 엄마는 무서웠어.
그 친구라는 사람이 엄마를 건들려고 하니. 방은 하나고. 방도 좁고.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아빠에게 말하면. 싸울것 같았고. 그사람도 아빠처럼 고아였거든.,,,,,
엄마는 무섭고. 괴로웠지. 그때는 너무 어렸잖니. 아무말도 못하고 지내니..그사람은 더욱 밤에 엄마를 건들려고 하고. 그래서 엄마는 옷 핀을 준비했다.
손이 오면. 핀으로 찔렀다. 그렇게 하니 좀 정신을 차리는 ㄴ것 같았다.
아침이 되면. 엄만 그친구 얼굴조차도 쳐다보지 못했는데. 그 사람은 너무 뻔뻔하더라.
그렇게 짐승처럼 살아야 했지. 너무 수치 스럽고. 챙피했어. 아무에게도 말도 못하고.
순진한것이 아니고. 난 바보였어.
늘 참고 속으로 울고. 정말 바보 였던것 같구나.
그리고 우린 생활이 어려워 지니.다시 지방으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는 좀 사람답게 사는가 싶었는데. 너의 큰 아빠라는 사람이 와서 괴롭히고.
그래도 엄만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삼천포에서 동현이를 낳았지. 그곳에서 현이가 양수기라는 기계에다. 손가락을 넣어서. 손가락이 구부려 졌는데. 아직도 그것을 고치지 못했다는말 너에게듣고는 엄마가 젤로 마음이 아팠어.
우리 현이 그 손을 고쳐 주어야 했는데. 돈이 없어서 못 고친것이 한이 된다.
하기야 그때는 늘 바닥을 기어 다녔으니. 어쩔수가 없었지.
그렇게 힘들어도. 엄만 형제들이나.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았다.
먹을 것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었지..어느 누구에게 손을 벌리지도 빌리지도 않았단다.
욱아. 현아.
그래서 엄만 이세상에서 너희들에게만 제일 미안하고. 죄을 짓었지.
다른사람에게는 없다.
있다면. 우리 친정아버지란다. 내가 자식으로서 너무 그분의 가슴을 아프게 했으니까........

2007년 8월 30일 목요일

첫 출근..ㅎ

첫 출근을 했다..
감회가 새롭네. 난 열심히 배워서 일을 할것이다..
이제는 할일이 별로 없는 관계로. 여기서 안정을 찾아야 할것 같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동욱이하고도 편해졌고..메타도 엄마를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분영씨가 중간에서 도와 주기로 했다..
아무튼 열심히 일을 하고 난후..내년에 우리 아들이 오면..그리고 메타가 오면. 그아이들을 위해서
뭔가 해야 할일도 있고..돈을 벌어서..내년에 우리 아들 맛난것도 사주고..가고싶은 곳도 데리고 가고.
이번 여행에는 내가 별로 한것이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내년여행은 뭔가 뜻 있고..가치있는 것으로 생각을 해보자..
나는 열심히 일을 하고. 돈을 벌것이다ㅣ.
내일을 위해서..아들을 위해서...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다시한번 다짐을 해본다..........

2007년 7월 12일 목요일

보내지 못한 편지

사랑하는 내 아들 욱아.
그동안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어.
요즘에 무슨일이 너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알수가 없어 난 너무 답답하다.
널 사랑하는 마음은 금쪽 같은데..어찌 널 그렇게 보내야만 했는지 모르겠구나.
다시 돌릴수만 있다면. 돌리고 싶어.
널 그렇게 보내는 것이 아닌데. 어떡하면 좋을까...
너에 아픔을 생각하지 못한 사람처럼 어떡해 너를 그렇게 보낼수가 있었을까..
미안해 정말 미안해..
용서하라고 는 말하지 않으마. 그저 날 조금만 이해을 해 다오.
사랑하는 욱아.
엄마는 수술을 해야 할것 같구나. 중이염이야.
수술은 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중요한 수술이라고 하더구나.
근데 엄마는 무섭다. 하도 여러번 수술이라는 것을 해서 이제는 무섭고 하고싶지않지만. 그래도 해야 할것 같아.
마취가 잘 깨어나지 않아서 늘 그것이 걱정이야..
욱아. 현아..
만약에 엄마가 영원히 깨어나지 않아도 난 너희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너에게 수 많은 편지을 보냇지. 난 그것이 모두 진실이고 너희들을 사랑하는마음 영원히야..
너희들은 날 살게 하는 생명수 였어.
근데 이제는 희망이 없다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기대 조차 희미해저.
오지않은 편지을 기다리면서 난 삶에 의욕을 잃었단다..
내가 살아야 할 아무런 기대와 희망이 없어. 하지만 그래도 지금아버지와 시연이을 위해서 살아야 하겠지만. 자신이 없구나.
지금 내 건강은 말을 할수가 없을 정도로. 힘들어.
살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자연 힘이 없어.
병 따개 조차 딸 힘이 없단다..
살아서 무엇을 할까 이제는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아.
아침에 눈을 뜨면 죽음을 생각하는 내 자신이 무섭다.
그리운 내 아들 욱아. 현아.
너희들을 난 죽도록 사랑한다. 하지만 표현을 잘 못해서 오해을 사곤 해.
왠지아니. 엄마는 오래동안 그 누구를 사랑하지 못해서 그렇거야.
난 너희들을 보낼적에 이미 모든것을 다 잃었어.
내 마음을 모두 너희에게 보냈기에. 내가 살아있어도 살아 있다고 느끼지 못했지.
그런 내 아들을 만나서 너무 널 서운하게 보냈지. 미안해.
내 아들 하지만 엄마 마음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다오.
이제부터는 우린 평생을 만나고 살아야 하는데. 손님같이 대접을 할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몰라.
널 만나기 전에는 어떻게 널 대해야 할지 몰랐는데. 막상 만나고 보니. 역시 넌 내 아들이고 난 너의 엄마였다.
어색하지도 않고. 그저 잠시 떨어져 잇었던 것 같아서.
미안해. 내 아들 정말 미안하다.
만약에 엄마가 죽어도 너희들은 꼭 행복해야 한다..
현이 말대로 내가 바라는 대로 너희들은 잘 살아야 한다..
가정을 만들고. 자식을 낳고. 행복하게. 아름답게 잘 살길 엄마가 늘 보살펴 줄께..
근데 사람이 죽어서 너희들을 놓지 않으면. 그것이 해가 된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난 죽어도 너희들을 품고 죽고 싶지 않아.
모든것을 다 잊고 편안하게 죽고 싶어.
난 지쳤다. 생에 한가운데서. 무엇을 얻고 싶어서 살았는지 모르겟다.
엄마 삶은 너무 힘들고 고단했다.
내 목적은 그저 너희들이 잘 커서 다시 만나면. 행복하게 살고싶었던 것이였는데.
이제는 그 꿈마져 버려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너무 무섭다.
아가야. 내 아가야. 너희들을 버린 엄마를 용서해 주렴..
난너희들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결과은 버린것이 였던거야. 그치..내 아가들아..
욱아..현아..내 아들 욱아..현아..보고싶다. 너무도 보고싶어. 정말 정말 너희들을 사랑해.....
내 사랑 내 아들 욱아. 현아..안녕...

2007년 6월 14일 목요일

어린이 대공원에서.

간만에 나들이 우리 시연이 지원이 어린이 대공원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시연이가 너무 피곤해서. 잠에 떨어졌네...ㅎㅎ
지원아 지금 넌 뭐해니..언니는 자는데..우리 지원이는 채력이 좋네...

메타가 덴마크로 돌아갔다..자기 엄마를 찾아달라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해서. 서울에 다녀왔다..
그애를 도와 주는 과정에서.난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애들은 많은 고통과. 번뇌를 난 느낄수 있을것 같았다..
아마도 우리 동욱이 동현이도 그랬을 것이다.

머나먼 프랑스에 도착하는 순간에 얼마나 놀래고.당황스러웠을것을 생각하니.가슴이 메어진다.
그동안 난 내 고통만 생각했지..그애들에 고통과. 갈등을 생각하지못한 내가 너무도 한심스럽다..

지금 이순간도. 난 우리 아들을 그리워 하면서도..서운한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정말 엄마 생각이 나지 않은 것인가..후해을 한다..왜 그 멀리 보냈을까..이런것을 생각하지 못한 내가 너무 싫다.
난 우리 아들이 엄마를 찾아 꼭 돌아오리라고 믿었는데..정말 난 믿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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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30일 수요일

5월 31일

이렇게 하루를 또 보내고 있다..
동욱이 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잊으려 해도 잊을수가 없는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오지 않는 편지을 기다리면서.내가 쓴 편지 그리고 동욱이가 보낸 글들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어서 일을 하고싶다..그냥 시간이 가도록 잊고 일을 하고싶다.


해인 삼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려터니.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 일편명월만 빈 가지에 걸렸어라*^^*

2007년 5월 27일 일요일

시간이 흐른뒤에..


잠이 오지 않아 동욱이 메일을 읽어보고 또 읽어본다.
무엇이 그리 생각을 하게 끔 만들었을까?
난 여러가지 생각들로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도 엄마들과 모임에서 이야기을 했지만.
정말 손님 같이 대접을 하듯 무조건 이해하고 받아들려야 하는가...
난 정말 싫다. 그렇게는 하기싫어.........내 자식인데. 어찌 손님 같이 대해야 한단 말인가............제인 정. {피의 언어} 쓴 작가 그사람은 지금 한국에서 정착을 했다.
미국으로 언니와 함께 입양간 사람인데. 언니는 그곳에서 결혼을 해서 미국에서 살고. 제인 정. 즉 정 경아..는 한국이 너무 그리워서 한국에서 정착을 하고.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한국에도 잘한다. 매우 잘하지는 않지만. 천천히 말하면. 다 알아 듣는다고 한다.
그 경아씨에게도 말했듯이. 잘나도 내 자식이고.못나도 내 자식이다.
물런 그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냈지만. 어쩔수 없는 선택인데..........
난 이렇게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면. 아니 진정으로 엄마인 생모를 이해한다면...가슴 밑바닥에서 부터 이해을 해야 한다고..
사소한 것도 이해을 못하고..더큰 일들이 닥친다면. 그때는 어찌 하겠는가..
아마도..의절을 하겠지..다시는 보고싶지 않다고..냉정히 돌아서겠지...
난 마음이 너무 아프다..
편지 내용도.그렇고..내 가족이라고..자기 엄마..날더러. 잊으라는 건가..지금 메타가 애을 쓰고 있는것 같다.
욱이와 나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고 싶어서..원하지 않아..나는 원하지 않아..
이것도 하나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인데..부딪쳐야 성격을 알고....생각을 알수있는데..아~~~~~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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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8일 금요일

내 이야기.1


지금부터 난 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혹 나중에 내가 잘못 된다면. 이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길 ....
아니면. 나중에 우리 아들이 보기를 바라면서..

난 1960년 6월에 서울 대방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많이 배우신 분이고. 엄마는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글씨를 배워서 나중에는 잘 읽고 쓰기도 했다고 아버지에게 들었다.
내 위로는 오빠가 셋이나 있다.
엄마는 내가 첫돌을 넘기고 바로 돌아가셨다..아버지 혼자서 우리 사 남매을 기르셨다..
물런 가르치고. 잘 입히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사랑으로 우리들을 키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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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0일 목요일

리아의 희미한 기억을 찾아 2


제가 새로 사귄 입양아 친구들은 제게 새로운 기관과 단체 그리고 여기 서울에 있는 다른 입양아 친구들을 소개 시켜 주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입양아들이 여기 한국에 돌아왓는지는 전 모르겠스빈다.
그리고 입양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적그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제가 한구에 있다는 그 사실에 저는 아주 편안해 졌고 마침내는 "뿌리의 집"으로 갈 때 내리는 지하철 역의 이름도 발음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제가 이 입양아 공동체에서 배운 점은 진정 정치적인 입양이 무엇이며 전 세계적으로 입양아들이 그들의 부모와 친구들에게 어떠한 대접을 받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 지금 이 자리에서 정치적인 언쟁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 매우 놀랐고. 지금 논의 되고 있는 문제에 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 평택에 있는 고아원과 미혼모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평택에서의 시설들은 제에게 오늘 날의 저를 감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 제 생모가 입양기관이 저를 입양보내도 좋겠다는 서류에 사인한 것이 참 다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가정을 찾지 못하는 장애아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경험이었습나다. 전 제가 자원 봉사를 했던 ㅇ동방사회복지회 일시보호소에 있는 아기들이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 입양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나다.
왜냐하면 단지 "아기"라는 이유 때문이죠.

때때로 저희 희미한 기억들이 제게 암시합니다.
제 인생의 한 흭이 될만한 중요한 순간들은 지나갈것임을 압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그 순간들이 너무 빨리 지나가 제가 아주 중요한 사건들을 그저 스쳐 지나가지나 않을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이미 지나간 후에야. 많은 세세한 부분들을 다 놓치고 난 후에야 그것들을 다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런. 전 한국에서 지낸 제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의 시작을 그 갈색 파일에 의지해야만 합니다.
제가 다시 그 파일을 검토했을때 제가 오직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역사의 시초가 그런 덧없음. 즉 반으로 접혀져 짖어질 수 있은 종이 쪽지에 담겨 있는 게 얼마나 현실적이지 못한가 하는 것입니다.

사회 복지사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제 귀를 통과하기 전에 잠간 멈추는 것처럼 들립니다.
마치 그 단어들이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 파일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을 얼마나 많이 드었는지는 몰라도. 그 안에서 애기 하고 있는 내용이 나에 관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 파일 속에서 진자인 것 같은 면은 오직 하나. 제가 1999년 부모님과 함게 한국을 방문했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그런데 고아가 된 아기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아이들의 생김새와 아이들이 곰지락거리는 모습들을 나의 어릴 적 모습과 견주어 보아가며. 아기들의 조그마한 손가락을 쥐어보고, 나의 과거와 연결이 되는 것 같은 느김을 처음으로 느꼈을 때, 그리고 나 자신을 작은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동일시 할 수 있었을 때. 아이와-한 때의 "나"였지만 베일에 가려진 것만 같았던 그 작은 아이와. 한 때 내가 살았던 한국이 인간적이고.인격적인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방문 후에. 저는 한국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최초의 역사 후에 축적된 인생의 기억들에 감사를 드립니다.
전 제 파일 외에도 읽어야 할 한국의 역사가 있고. 만나야 할 나와 같은 입양아들이 있으며 또한 갈색 파일만이 자신의 지금가지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고아들로 가득찬 고아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언젠가는 저는 제 인생이 바뀌기 전의 그 초기의 제 살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는 한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데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하겠습니다.

입양 과정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저의 프로텍트를 통해서 제가 의도하는 바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큰 무리를 만들고. 서로 엮여진 사람들이 인간답게 될 수 있는 하나의 활동무대를 제시해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머리 속에서 그려내는 입양이라는 것은 고아에서 입양아로 연결이 이루어지는 때를 말합니다.
고아들이 더 이상은 입양아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들ㄹ을 어던 이야기와. 역사와의 관계 속에서 보게 되고 유망한 장래와 연결을 지어서 하나의 개체로 보게 됩니다..
현존하는 입양아들은 우리들도 고유의 품성을 지닌 똑같은 사람이며. 모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힘든 인생과 싸워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줍니다.
이런 맥락에서. 고아를 보면서 사육장이나 교역물품을 연상하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 입니다.
왜냐하면 상품이나 농장의 동물들은 예술가. 작가. 의사. 변호사. 교사 등등으로 성장 발전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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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9일 수요일


우리는 매일 많은 말을 듣고 또 하고 산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수 만큼이나 말의 양과 질도 매우 다양하며 인간들기리의 좋은 관계도 나븐 관계도 말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말을 할 수 있음에도 오직 침묵과 기도의 삶에 몰입하기 우해 곡 필요한 말은 수화로 한다는 엄격한 관상수도회인 트라피스트 수도자들은 말을 안하는 그만큼 말로써 죄를 지을 확률도 적어지겠구나 하고 생각해 본 일이 있다.
늘 가가이 대하는 가족. 친지. 이웃기리도 서로 만만하게 여겨져서 주고받는 말들이 때로는 깊은 오해와 상처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있고. 초면에 말을 잘못해서 좀체로 좋은 관계가 이우어지지 않는 경우를 보더라도 참으로 말을 잘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병고에 시달리며 누워 있는 이에게. 사랑하는 이와의 사벼의 슬픔으로 괴로워 하는 이에게 또는 사업에 실패하거나 시혐에 떨어져서 낙담하고 있는 이에게 적절한 위로의 말을 찾아 하는것은 어던 좋은 일이 있을 때 축하나 감사의 말을 건네는 것보다 훨신 어렵게 느껴진다...
곡 합당한 말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막상 표현을 하자면. 생각이 안나고 말이 궁해 답답해지는 것을 나도 열러 번 경험했다.
"어설프게 위로한다며 오히려 상처를 주기보다는 아예 입다물고 가만히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가요?'하는 말도 종종 듣게 되지만 이는 너무 소극적인 태도인 것 같다.
우리가 글시를 배우고. 피아노를 배우고 뜨개질을 배우듯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좋은 말을 배우는 데도 많은 연구와 노력의 연습 과정이 곡 필요한 것이 아닐가?
평소에 좀더 관심을 갖고 우리말 공부를 하고. 남의 말을 열심히 듣고 좋은 책을 통해서 좋은 말을 배우며실제로 잘 활요하려 애슨다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매일의 언어 생활이 좀더 아름답고 깊이 있게 변화 되리라 믿는다.우리의 품격을 떨어드리는 저속한 말. 너무 피상적이고 충동적이고 겉도는 말.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한 말을 습관적으로 하지 않으려면.우리 마음과 삶의 태도부터 맑고.곱고. 선하게 가꾸어야 하리라. 우리의 말이 향기로우면 우리의 삶 도한 향기로워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노력하는 수행자 의 모습으로 매일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가금 이런 기도를 해본다.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역겨운 냄새가 아닌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말들이 이웃의 가슴에 꽂히는 기쁨의 꽃이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

세상이 조금식 더 밝아지게 하소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는
험담과 헛된 소문을 실어나르지 않는 깨긋한 마음으로 깨끗한 말을 하게 하소서.

나보다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
남의 나븐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

매일 정성것 물을 주어 한포기의 난초을 가꾸듯 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올린
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를 가다듬게 하소서 겸손의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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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뉴욕의 길거리를 헤메도.

서울의 길거리를 헤메도.

베이징의 길거리를 헤메도

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파리의 길거리를 양어머니와 걸어도

런던의 길거를 양어머니와 걸어도

밀라노의 길거리를 양어머니와 걸어도

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리아의 희마한 기억을 찾아.

제가 태어났을 때 제게 주어진 이름은 이현주입니다.1985년6월15일 생후 15개월 되었을 때 제게 다시 리아 현주 배럿이라는 이름이 주어졋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경험하는 첫번재 것들. 예를 들면 첫 걸음마. 최초로 먹은 음식. 그리고 최초로 말한 단어 이런 것들 대신에 저는 최초로 갈색 파일을 가졌읍니다. 그 파일 겉 면에는 나의 번호가 있었고. 이 파일은 비슷한 종류의 수천개의 다른 파일들과 함께 어떤 방에 저장되어 있었죠

저에겐 그 파일만이 어디서 제 역사가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제가 유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저의 흔적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입양된 많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은 두 사람은 매우 가난합니다. 겨우 자신들만을 부양할 수 있는 처지라 아이를 입양보내기로 합니다.

전 입양된 이후로 한국을 몇 번 방문했습니다. 제 양부모님게서는 제가 어렸을 때 약속하신 대로 제가 15살 이 되었을 때 저의 고국을 방문하게 해 주셨습니다. 1999년의 타는 듯한 더위가 한창인 여름이었읍니다.이 여행은 제가 부모님과 함게 도착한 많은 여행지 중 한 곳이었지만. 저희가 한 가족으로서 같이 한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양부모님은 그 다음해에 이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두 분이 없었다면 한국 여행이 한국 여행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아직감정적으로 충분히 성숙되지 못했었지만. 제가 제 조국과 다시 합체를 이루기에 아주 딱 맞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성장하면서 저는 한국 문화를많이 접할 수 있었읍니다. 또는 입양 공동체와도 접촉이 있었읍니다.최초의 고국 방문이 제가 다양한 한국 입양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 1999년 여름에 저희 8명의 입양아들과 가족들은 가라오케가 장착되 마치 멕시코의 피에스타 스타일저럼 보이는 내부를 한 버스를 타고 한국을 순례했습니다. 그때는 끝이 없어보니는 사찰과 궁.탑.그리고 박물관을 방문햇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한국의 대중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읍니다.H.O.T의 음악을 들었고 잡지들을 사 모앗으면. 드 당시에 저희에게 적합하지 않은 비디오를 빌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 경험은 적어도 저에게는 한국에서 제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는 것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관광지는 아마도 부모님에게 딱 맞는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최신 아이들 스타와 이태원에서 구입한 자질구레한 장신구에 대한 관심은 제가 개인적인 제 역사를 탐구하게 되었을 때 시들해졌습니다. 제가 최초로 머물렀고 입양을 주선했던 동방사뢰복지회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제 파일에 보관해둘 사진들을 가지고 갔었습니다. 전 제 주소와 전화 번호도 함께 기입했는데. 언제가 다른 곳에 사는 누군가가 저에게 관심을 가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제 생각에 그 누군가 는 그 파일이 생기기 이전의 잃어 버린 제 삶에 꼭 들어맞는 퍼즐을 제게 줄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전 쓰라린 눈물을 참기 위해서 진땀을 흘렸는데. 미혼모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그리고 제 위탁 부모님을 만났을 때 다시 눈물이 나왔읍니다.

전 다시 2004년 겨울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밖에는 머무르지 않앗습니다. 대학생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일종인 "바다에서의 한 학기"라는 크루즈 배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에 저희는 짙은 안개가 낀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앞이 보이지 않아서 저희는 하루 종일 헤맸었고, 한국에서 그렇게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전 울고 말았습니다.

전 제 친구들에게 김치. 갈비 그리고 불고기를 소개해 주었고.제가 조금 알고 잇는 한국의 음식과 식사 예절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전 제 친구들이 한국의 음식. 문화. 예술과 경치를 극찬해 주자 제고국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습니다.하지만. 며칠이 지나자.전 뭔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지난 여름에 저는 가장 친한 친구 클라우디아와 함께 스페인의 빌바오와 샌 세바스티앙까지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전 "내년에 무엇을 하고지낼까"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점점 대학 졸업반이 다가오고 있었고 졸옵을 위해 필요한 2가지 졸업 프로젝트를 위한 영감이 필요했었습니다.클라우디아와 함게 맣은 인도주의와 박애주의에 관한 문제들을 의논한 후에 저는 다른 곳에서 세상을 구하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먼저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설득으로. 아버지는 뉴욕 발 서울행 티켓을 발급 받아 주셨습니다.그래서 학부의 마지막 겨울 방학을 한국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얼마나 시적으로 들리는지요!!미국을 일컫는 "인종의 도가니"라는 마음을 상게하게 하는 표현과는 달리 청명한 풍격 속으로 미끄러지듯 두드럽게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내는 가락지 같지 않습니까""뿌리의집"에서 저는 전 세계에서 온 한국 입양아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전 제가 한국인들이 가득찬 집안에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이런 현상은 전에는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벽에 아가에게

새벽에 아가에게

정호승

아가야 햇살에 녹아내리는 봄눈을 보면.
이 세상 어딘가에 사랑은 있는가 보다.

아가야 봄하늘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면.
이 세상 어딘가에 누눌은 있는가 보다

길가에 홀로 핀 애기똥풀 같은
산길에 홀로 핀 산슴바귀 같은

아가야 너는 길을 가다가
한 송이 들꽃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라.

오늘도 어둠의 계절은 깊어
새벽하는 별빛마저 저물었나니

오늘도 진실에 대한 확신처럼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은 아직 없나니

아가야 너는 길을 가다가
눈물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라......

입양의 날.

입양의 날이라. 동방사회복지을 다녀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했다. 아는 엄마들이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우며. 간담회을 가졌는데..정말 행복해 보였다
물런 그중에 가정사에 문제가 많은사람들도 있었지만..나름대로 행복하게 가정이 가꾸어 가는모습이 정말로 보기 좋았다.
오늘도 욱이에게서는 편지가 없다. 정말 그렇게 서운했을까?
이제는 기다림을 접어야 하는가? 모르겠다. 무엇이 그리도 서운했는지?
이럴때는 정말로 미치겠다. 차라리 말이라도하면. 변명이라도 하겠는데. 편지을 보내도 답장이 없다는것이 정말 견디기가 힘들다.
욱아. 정말 엄마를 잊을거니. 이렇게 많이 서운했니.내가 그렇게 행동한것이 너에게 충격이였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래 서운했을거야..미안하다.
정말 정말이지..이제는 욱이 생각을 접어야 하는가. 이제는 살아있는것으로 만족을 해야하는가?
사랑하는 욱아..
널 만나서 엄마는 진짜 행복했다..너가 머문 보름을 정말 꿈같이 지냈다.
정말 행복했고.너가 반듯하게 자라서 고맙고. 대견하고.너무 사랑스러웠다..고맙다. 욱아. 현아.
이제는 너희가 살아있는것으로 만족할께..더이상 욕심을 내지 않으마.
너도 많이 힘들겠지.양쪽에 부모을 두고..갈등과. 어느 한쪽을 선택을 해야하는것도 힘들지.
물런 양쪽을 다 사랑한다하지만. 그것이 힘들거야..
엄마가 어떡하면. 좋겠니??
너희들을 잊는것이 너희가 행복할수있을까?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우리가 서로 몰랐던 시절로 가야 좋겠니..
미안하다..이럴바에는 차라리 몰랐던것이 너희들을 위해서 좋을텐데..
정말이지 모르겠다.
난 너무 행복하고.온세상이 다 내것 같은기분이였는데..
사랑하는 욱아..보고싶은 욱아..내 아들 내아들..현아 욱아..내 아들..
이제는 여기서 멈춰야 하는거니..더이상은 안되는거니..
엄마를 미워하지마..제발 미워하지마.......이엄마도 불쌍하지 않니..너희들을 보내고 그많은 세월을 눈물과 한숨으로 살았던.엄마가 불쌍하지 않니..
정말이지 마음을 비운다고 맹세을 했지만. 그것이 잘 안되는데..어떡하니..
너에게 편지을 쓰고 싶어도..무슨말을 해야할지 어떡해 말을해야 하는건지.망서려진다.
그래서 내마음과. 아픔을 여기에다 적어보는거야..
너가 읽어보지 못하겠지..아마도..이렇게 세월이 흐른다면.이 블로그도 끝이다..
더이상 너희들을 아프게 만들지 않을것을 맹세한다..
두번다시..내 맹세코..너희들을 아프게 하지않을것이야..
너희들이 날잊어야 한다면. 그렇게 하렴..하지만..말이라도 하고 하렴..그래야 내가 미련을 갖지않겠지..
그러지 않으면..난 미치고 말거야..지금 이순간..참기가 너무 힘들다..괴롭고.외롭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그토록 소원하던.내 아들을 만나서.. 이렇게 헤어진다면..난 어떡해 사니.
무슨마음로 세상을 살아간다니..
이렇게 두서없이 글을 써본다..이것은 욱이나.현이가 읽어볼수가 없다는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2007년 5월 4일 금요일

철이오빠 장례식장에 다녀와서.

철이오빠 장례식에 다녀왔다.
생각해보면. 슬픈데..모두다 웃는다..오랜만에 만나서 웃는 모습이 참 좋은데..
그래도 슬픈날인데..호상이 아닌데..모두 웃는다..즐겁다는듯이..그래 죽는사람만 불쌍하다.
아득하게 잊어져 간다..무섭다.사랑하는 사람들에 뇌리에서 잊어진다는것이 두렵다.
나도 언제가는 잊어져 가는 사람중에 한사람이 되겠지..비롯 사랑한다고 해도.언제가는 잊어져 가겠지...생각만 해도 가슴이 메어진다.
난이는 오지 않았다..우리가 갔는데도..사우나 에 간다고..참으로 웃음이 난다.
무엇이 잘못된것일까..서로 무슨 오해을 했기에..친오빠가 마지막으로 가는길 조차 오지않은것인지..이해을 할수가 없다..
아무리 화가나고..서운하다 한들..마지막인데..정말 보고싶어도 볼수없는 오빤데..
왜 오지 않는것인지..사우나..정말 사우나를 갈정도로..그렇게 무심해 질수있을까...
암만 생각해 보아도..그것은 아닌것 같은데..사람들이 무섭고..싫다..정말 인간이 싫었는데..
그래도 좋아할려고 노력했는데..난이야..그것은 아닌것 같다..아무리 생각해도 너가 너무한것 같구나..오늘이라도 찾아가렴..꼭 그렇게 했으면..좋겟다..
그래도 오빠.마지막 길이 아니겠니..불쌍하게 살다간 오빠를 생각해서..꼭 찾아보렴..
장례식에 갔다 오는길에 시연아빠랑 많은 이야기을 했다..
밉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미운사람인데..그래도 미워할수가 없다.
아니 미워하지않을려고 노력한다..내가 이제와서.남남이 된들 무슨소용이 있을까...
내가 사랑한것 만큼..앞으로도 노력을 해야겠지..그래 앞으론 열심히 사랑하자..
옛날에 그사람을 몹시 사랑했듯이.사랑하도록 노력하자..
날 힘들게 하고..서운하게 하고..아프게 했지만..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데..좀더 참고 살아야 겠지.. 그래도 날 사랑하는 사람인데..이세상에서 그사람만큼 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데..
이제는 나에게는 시연아빠랑.시연이 밖에는 없는것 같구나..
우리 아들도..날 잊어가겠지..조금씩.아주 조금씩.......기억속에서..지워가겠지..
정말 난 무엇을 위해 살아왔을까...새삼 의문이 생긴다.
정말 난 반쪽인생을 산 것일까......반은 아이들에게.........반은 시연아빠에게..그리고 보니 어느 한쪽도 제데로 한것이 하나도 없는것 같네..
시연아빠 미안해요..앞으론 정말 잘할께요...정말로 노력할게요....
지금부터 시작할거야..공부도 다시 시작하고..열심히 노력할거야..나에게 실망하지 않게말이야.
이제는 모든것을 다 잊고..욱아.너에게 연락이 없다면..엄마도 잊을거야..
잊지못하겠지만..죽어도 잊지못하겠지만..적어도 노력은 할거야..
너가날 잊는다면.말이다..아무리 슬퍼도.울지않을거야..널 붙잡지도않을것이고..너희들에 행복을 위해서..놓아줄거야....그것을 너희가 원하는것이라면..난 아무리 슬퍼도.가슴이 아파도.절대로 울지않을것이다..난 다시한번 마음을 다짐한다..
절대로 어떻한 이별이 온다해도..참고 견디기로..다짐한다..
너에 편지가 너무 냉정해..먼저온 편지하고는 너무 틀려..절제가 있어..이것이 나만에 착각일까..
아니야..절대로 아니야..이번에 욱이는 조금씩 냉정해 지려하겠지..
그러지 말거라..절대로, 엄마는 널 붙잡지 않아..너에 선택을 난 지켜줄거야..
난 욱이에게 편지을 쓰고 싶은것을 참고..이렇게 블로그에 적어본다..
하고싶은말 모두 여기에다 적어놓을거야..이담에 우리 아들 한국어 잘하면. 읽어보겠지..
그때 내맘 모두 알수있게 말이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어쩌면. 영원히. 읽어볼수없을지도 모르지...
한국어를 배울지 그것도 아직은 미지수니.........
하지만 한가닥 희망을 꿈꾼다...꼭 배울거라는것을...............

2007년 5월 3일 목요일

기다림..

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무작정 기다려야 하나.........한없이 기다리고 기다리것만......세월이 날 기다려줄까......
가는세월에. 나 어떡해 살아야 하는가......마냥 기다리면서 살아야 하나..........
내 기다림에 끝은 어딘가.........내 그리움에 끝은 진정 어딘가...........
많은 날들을 울고. 기다리고..그리워 하고. 살았는데.. 아직도 더 남아있는가.............
정말 슬프다..내 죄가 이리 클줄은 정말 몰랐다........모든것이 내 죄인것을..내가 받아야 할 죄인것을.........누굴 탓할수 있으랴.............
죄값을 치루어야 할것이다...아직도 남아있는 죄값을..........내가 죽는 날까지 그 죄을 그 죄의 값을 받아야 겠지..........모든것이 허망하고..슬프고..아프고..힘들지만..난 견디리라..
난 일어서리라...........좌절하지 않고..그 슬픔을 직시하고. 견디면서..홀로 서리라.
인간은 언제나 홀로 서야만 하는것인것을..........늘 혼자 아파하고.늘 혼자 슬퍼하고..그렇게 살야야 한다면..나역시 그러하리라.............

한국의 소주 참이슬과 동욱

하하 우습다. 우리 아들 모습이 담배물고. 소주병 들고 있는 동욱이 모습 하 하 하..
그래 이렇게 웃고 살으렴..이젠 더이상 슬퍼하지말고. 밝고 명랑하게 살으렴..
엄마는 우리 아들이 웃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대견하고..
너가웃으면. 내 마음이 너무 좋아..너에 웃는 모습이 엄마 심장을 멈추게 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꿈에 그리던 내아들..난 너무 행복했다..
온통 세상이 장미빛 으로 물들이고 있던것 같아..
이젠 엄마도 웃으면서 살수있을것 같아...진심으로 너가 행복해 보여서야..
우리 이제는 지난날들을 모두 잊자..이제는 앞으로 올 미래만 생각하자구나..
아..아..내 아들욱아.사랑한다..현아. 사랑한다.시연아. 사랑해..난 너희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이제는 아무것도 두렵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아..난 열심히..내 앞에 장애물을 건너면서.
새로운 희망에 꿈을 꾼다..
사랑하는 내아들들아..이제는 너희들도 가정을 갖고 한여자의 남편으로서. 또 자식을 낳으면.아이들에 아버지로서. 살아가겠지..부디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렴..엄마는 희망한다..
두번다시 슬픔을 간직한체 인생을 살지말자..이슬픔은 엄마 하나만으로족해..더이상 슬픔이 없는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너희들이. 정말 행복할수 있다면.내가 뭣할것이 하나도 없어. 난 너희들이 행복할수있다면. 어떻한. 희생도 할것야..
그옛날 내가 그렜듯이..앞으로도 할것이며..할거야..분명히..너희들이 행복할수있느냐의 조건이지만..
절대 후해하지않으것이며. 너희들이 날 어떻게 받아드린다 해도..절대로 후해하지 않아..어쩌면.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다시 시작된다해도..난 후해하지 않을것이야......
이번에 우리 아들이 많이 서운해서 프랑스로 돌아갔다..나한테 많이 많이 서운했다는것을 알지만..맘이 많이 아파서 돌아갔지만..
이제는 후해을 해도 소용없음을 알아..지난날들을 돌이킬수 없듯이..이것 또한 돌이킬수없는 문제..
너가 받아들이고..이해을 원하는 수밖에..너가 이해을 할수없다면. 그것 또한 어쩔수 없지..
미안하다..이제는 미안하다는 말 하지않도록 해야지....정말 너희들을 사랑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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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일 수요일

세계꽃박람회장에서.사랑하는 내 아들과.

지금처럼 행복할수 있다면..아.....아..영원히..행복할수있다면..얼마나 좋을까....
욱아..엄마는 너무 행복해..정말 이때만큼 행복한적이 또 있었을까.....
너무 행복해서 너무 행복해서..이대로 영원히 행복을 간직한채 죽을수만 있다면..좋겠다..
하지만. 간사한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또 다시 너에게 상처을 안겨준것을 미안해..
너에게 편지을 보내지 못하고..이렇게 엄마 블로그에다 적어본다.
내 심정. 내 마음.을.욱아. 정말 미안해..이때을 생각한다면. 모든것이 다 부질없는데..
그러지 못한 내 짧은 생각을 후해한다.
난 너가 상처을 더이상 받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내가 아플께..넌 더이상 아파하지마.
모든것을 다 이엄마가 대신 받을께..알았지..
대신 너희들은 장미빛 인생을 살도록하렴..좋은것만 생각하고. 행복하게..살아가도록해..
내 아들 욱아..현아......아...........아..욱아..현아..내 아들 욱아.........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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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에서 아들과 함께..

사랑하는 내 아들 욱아.
엄마에게 많이 섭섭했지..미안하다.널 그렇게 보내서.좀더 널 포근하게 안아주지 못해서.
모든것들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것을..왜 그당시는 그것을 참지 못하고.널 힘들게 했는지..
허나..엄마가 아무리 잘못을 했다한들..너에 잘못은 엄마가 알려주는것도.엄마가 해야할 의무야..
난 널 분명 사랑해..하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것들이 감추워 지진 않는다.
너가 이해을 못한다면. 그것은 할수없는거고.난 내가 살던 방식을 멈출순 없는거야.
우리 아들이 엄마를 조금만 이해을 한다면.좋을텐데..그것도 엄마 바램이겠지....
내가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말고..원하지도 말고.요구하지도 않을거라 맹세을 했지만...그렇게 못한것을 후해한다..
허나 너가 내 아들이기 때문에. 한거야..남같은면..뭐하고 그렇게 하겠니 그러거나 말거나지..내 아들이. 남들에게 손가락받는것이 죽기 보다 싫었다면..이해을 할까....................
우리 아들 생각하니..엄마가 지운죄가 너무 크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구나.
너무도 큰죄을 말이다.비롯 너희들이 많은것을 배우고..훌륭하게 자랐다고 하지만..
한국이라는것에 그렇게 이방인이 될줄몰랐다...엄마는 그것 까지 생각하지 못했다는것을 인정하마..
그곳에서도 이방인..여기서도 이방인..어쩌면. 좋을지..우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우리나라 정책이 너무 밉다..
이럴때..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것이 무엇일까...엄마가 어떡하면. 좋을까..........
분명이 내 아들이고..한국사람인데...넌 그것을 거부하는거니..아님..너역시 어떡할수가 없기에..포기하는거니..이것은 우리들에 문제만이 아닌것 같구나..모든 사람..아니..우리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 문제겠지.....
사랑하는 욱아..현아..
우린 이것을 극복해야 만 한다..이런것들은 사랑으로 이기고..지금부터는 사랑으로 모든것을 이해을 하고 감싸고.토론을 통해서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고 엄마는 생각한다..
물런 힘들고. 어렵지만..또 많은 희생. 그리고 댓가을 지불해야만 하지만..우린 해내야 한다..
앞으로 이십년..과연. 엄마가 그때 까지 살수있을까...가만히 생각해보니..이십년후는 엄마나이..70십을 바라보는데..
두렵다..모든것이 두렵고..무서워..이대로 영원히..가슴에 묻고 지낼까..이대로 영원히 널 만난것만으로 만족하고.묻어버려야 하나.......
지난 이십년이 너무도 한스럽다..한순간에 선택이..모든것을 잃어버린 지금 과연 엄마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묻고싶다..
욱아.현아...그립고 그리운 내아들.......20년 공백이 무섭다..그래도 낮설지 않은 내아들의 모습........정말 사랑스럽고..대견하고..장한 내아들인데..마음한번 표현못하고...말한마디 제대로 나눠보지 못하고.그냥 널 보내야 하는 내마음이 무척 아프고..괴롭고.. 너무 힘들었다.
꿈에서도 그리워 하던 아들을 언어문제로..대화을 제대로 하지못하고..난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먹고사는것만 생각을 했지..왜.........왜 오늘에 이런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했을까...
당연히 욱이가 한국어를 할것이라 생각만 했지..내가 외국어을 배워두어야 한다는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너무 한심하고..한심하다.........
이런내가 너무도..못나고..생각이 부족한 내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이제와서 후해을 한들 무슨소용이 있겠니...지금부터 시작을 해야겠지..
욱아..엄마는 삶에 의욕이 넘친다고 했지..지금부터 할일이 많아..돈도 벌여야 겠지만..이제부터는 영어를 배울거야..
너희들과 의사 소통이 되기 위해선..지금부터 노력한다..
목적이 생겼으니..너희들과 대화을 하기 위해선..아마도..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해야지.
우리가 대화을 할수있다면. 이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것들인데..아~~~~~~아..내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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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3일 월요일

11월6일

늦께 까지 누워 있다가 빨래을 하고 방을 치워 놓고 집을 나섰다.병원에 좀 다녀오려고 한다..
애들 아빠가 병원에 있다..
난 아이들을 보내기 위해서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하고 있다..밥이라도 해서 먹이고..아이들과 놀아주고 싶다..
헤어지면. 언제 볼지 모르기 때문에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있고 싶어서..아니 그동안 아이들이 편하게 지내게 하고싶은지 모르겠다..병원에서는 생활이 말이 아니기에..먹을 것이 없기에. 허구한날 아이들을 굶겨야 했기에..병원에 가니 애들 아빠가 반가워 한다..거진 열흘만에 얼굴을 보는것 같구나..
얼굴이 좋아 보인다..하긴 걱정이 있나 병원에서 나오는 밥 먹으면서 지내면 되는데...
순간 화가 난다..미워 하고싶지만.이제는 미워 할 가치조차 없는사람이라 생각이 든다..
많은 이야기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반가워 한다..내 새끼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내 아기들..어쩜 좋을지........
눈물이 난다..울지말자고 다짐하지만..아이들를 바라보면.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불쌍한것들..지 엄마 아빠 잘못만나 너희들이 고생이 많구나..
내 아기 욱이..현이...어떡하니..이제는 헤어져야 한다는데..
생각하지말고 저녁을 해서 아이들을 먹여야 겠다는 생각으로 저녁을 짓고..아이들을 씻기고.
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재미있는 저녁을 먹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도 자야 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요즘에는 불면증으로 시달린다..아무리 자고 싶어도 잠들지 않는 지금 내모습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상념에 빠져든다..
아이들 자는 모습을 바라보면서..가슴이 져미는 이순간..죽고싶다..죽어버리고 싶다..나도. 아이 아빠도..우리 친정식구 모두를. 이렇게 가슴아프게 하는 내 가족을 내 아기들를 버려야 하는 이순간..다 죽이고 싶도록 밉다..
아무리 미워해도 소용없고. 후해을 해도 소용없지만...난 바보처럼 운다..차라리 바보가 되었으면 좋겠다...아~~가슴에는 피맺히고..한이 맺히고..멍들어 가는데..
아이아빠는 걱정도. 근심도 없다..말로만. 말로만. 보내지 말라고 한다..
그럼 너 열심히 돈을 벌거니..앞으로어찌 살것인지..말을 하렴..사고나 치지 말고..이 바보야..천치야.. 이번에도 너만 사고치지 않았다면...내가 왜 쫓겨나니..왜 우리가 갈곳조차 없이 만드니..
조금만 일하면..방을 얻어서..동욱이 학교 다시 보내고.현이 학원이라도 보낼려고 하는데..
왜..날 가만히 내버려 두지않는거야..제발 부탁이야..나좀 그냥 내벼려두면 안되는거니..
우리 욱이. 현이 나 이렇게 살려고 하는데...영남씨 제발 부탁인데;.
이제는 날좀 놓아줘..아이들과 함께 살도록 말이야..사고치지마..제발................
너만 잘 살면 되는데...왜 그것도 못하니..왜..못하는거야........야............빙신야...........
밤새 욕을하고..화을 내고. 울고 하다보니..아침이 되었다...
이제는 일을하러 가야 하는데..밤새 한숨도 못자서..눈이 토끼처럼 빨간눈이 되어버렸다..
동욱이가 놀린다..엄마가 우니까..잘못했다고 울지말라고 한다..
아~~~~~~~~~아~내 애기..내 애기..엄마 너희들 보내고 어찌 사니..너희들 보고싶어서 어찌 산다니..........내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니..어떡하니..엄마는 너희들은..어떡하니..불쌍해서 어떡하니..심장이 터질것 같이 아프다..허나 난 이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길 희망하기에 참고 맛보리라..
이보다 더한 슬픔이 없기에..난 입술을 깨물어서라도..견디고 가슴에 새기리라.........
이쁜 내 아들 욱이...개구쟁이 현이...........아~~~~~~~~~~~사랑한다...영원히...........엄마가 죽어서라도..잊지못한 내 아가들.........영~~~원~~~히.........사........랑...........해..............

2007년 4월 20일 금요일

보고싶은 나의 아버지..

몇칠만 지나면. 사십구제가 다가온다.
가까운 절이라도 찾아가 명복을 빌어드려야 겠다/
아버지..엄마 지금 두분은 함께 계시는가요. 두분이 다정하게.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하시고 계시는지요........
아버지..전 정말 아버지가 오래 오래 사실줄 알았답니다..
그렇게 쉽게 가실줄을 정말 몰랐읍니다..정말이지 오래 오래 사실줄 알았는데...
인생이란 허무한건지도 모르지....
아버지. 엄마 미혜가 이번에 일을 처리하고 나며는 생에 대한 미련 눈꼽만큼도 없어요..
그때 아버지 곁으로 찾아가면..반갑게 대해주세요...
왜....왔냐고 묻지마시고.어서 오라고 품안에 안아주세요...
간절한 소망입니다..절대로 야단치지마세요..
지금 심정으로는 아버지 엄마 품으로 달려가고 싶어요...
너무도 따스한 아버지 품이 그립습니다..너무 그리워요..보고싶어요..

11월5일

자꾸만 눈물이 나온다..울지말자고 다짐하고 또 했건만...자꾸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한없이 약해지는 마음 갈수록 자신이 없고..초라하다.
비참하고 더러운 내 목숨 또 하루를 연맹해 보자..
파리목숨보다 더 더러운 목숨을....
사람들이 무섭고 두렵다..나를 바라보는 눈빛이.모두 부정하고 있는것 같다.
무서워서 숨고 싶다..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난..어떡해 살아야 하나..
시간이 흐르수록에.그들에 시선을 잊을수가 없다..
판사의 눈을..동직원 눈빛을...병원사람들에 눈빛을..잊을수가 없다..
왜 나만 죄인인가..이렇게 만든사람은 누군데..날 이지경까지 만든 사람은 과연 누군데..
묻고싶다..이것이 내 죄인가을..........
아픈사람 붙잡아..이혼하고.........시간이 없다고 하지만..아니 시간이 없었다..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나에게는 없기 때문에...돌아보지 말자...
생각하지도 말고..
미헤야..불쌍한 미혜야...넌 어떡하니..어쩜 그렇게도..복도 없니...남에게 못할짓도 안했는데..

11월 4일

하루가 또 지났다..
악몽같은 하루.또 다시 해는 떠오르고..난 또 시작을 해야 겠지..
아침에 눈을 뜨면..난 기쁨보다 슬픔을 느낀다..
왜 이리 사는것이 힘들까...잠자리에 들적에 난 기도한다..아침에 눈을 뜨게 하지 말아달라고..
보잘것 없는 이한목숨...그냥 거두어 달라고..
끝없이 죽음에 유혹을 견딜수가 없다.
오늘은 악몽같은 하루다..생각하고 싶지 않지만..난 이글을 적는다.
우리 아이들과 병원에서 난 생활을 하였다..아침마다 병원사무장에게 불려간다..
나가라고. 병원에서 생활을 할수없다고 한다..
너무 챙피하고.부끄럽지만..난 말한다..갈곳이 없다고..우리 아이들과.갈곳이 없다고..뻔뻔하게 말한다..
하지만.우리 아이들을 멀리 보내기로 결심한뒤로는 어떻하든..그아이들을 먹이고..재울곳이 필요하다...내 몸을 팔아서라도..말이다..
난 몸을 팔기로 했다..지금 이순간 내 아이들에게 잠잘곳을 재공하고...먹을것을 준다면. 말이다,
병원에 오는 사람에게 난 몸을 맡기고...아이들 서류를 준비를 하엿다/
동사무소에 가니..직권 말소..어느 하나 완전한 것이 없다..
벌금을 물고.. 아이들에 서류를 준비하던중에..직원이 나에게 어떻게 아이들을 보낼수있느냐고 따진다....뭐라고...지금 뭐라고 하는거야...
야.....너가 뭐를 알아...너가 지금 내 심정 알니...이 터질것 같은 심정을...여리한 날로...온통 마음을 찢기는 이 심정을 넌 아니..폭발할것 같은 이심정을 넌 아니...
천진한 내 아이들이 하루종일 먹을것이 없어.굶을때 그 모습 을 바라보는 이심정을 넌 아니..
잘곳이 없어..거리를 방항하는 이심정 넌 아니...
눈물이 흐른다...하염없이..울지말자고 다짐을 했건만............난 또 울고 말았다..
피눈물이 흐른다...심장 저 밑바닥에서...끓어 오르는 눈물.
아~~주민등록이 말소 되어서 어떡하나..갖은 돈은 없는데..갈수록 일은 어렵고 자꾸 꼬인다.
자꾸 비틀어 가는 내 인생...넘 비참하다..오늘 난 돈에 환장한 사람마냥...몸을 팔아야 했다..
죽고싶다...비참한 내 인생에 눈물이 난다...하지만 참자..
우리 아들을 위해서 참자..지금 내가 아들이 없다면..왜 내가 이런짓을 해야 하며 해야 할것이 없지...다 잊고 우리 아들만 생각하자...그 불쌍한 내 아기들만 생각하자..
수희 엄마가 죽이고 싶은만큼 밉다..아니 죽이고 싶다..내 오빠들 모두가 밉다..
다 죽이고 싶을정도로...
너희들 잘 살아라...내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댓가 꼭 값으리라...내 맹세 하건데..꼭 값을거라는것....얼마나 잘들 사는지 꼭 지켜볼거야....
지금에 내가 두렵다 못할것이 없는 내가 두렵다..무섭다..이렇게 악만 남은 내 자신이 너무도 무섭다.....

11월2일

28년을 살아오면서..난 무엇을 했을까..
결혼..아이 남편..가정..이혼..이과정을 거치면서..수없이 좌절했고.수없이 울었고..수없이 생에 몸부림 치고.수없이 미워하고. 수없이 싸우며 살아왔다..
과연 무엇을 위해. 짧은 생에지만. 미련은 없다. 후해도 없다..
다만 소리치고 싶다...주장하고 싶다..
나도 사람이였다고...나도 심장이 뜨겁고..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고..소리치고 싶다..
나도 사람이기 때문에. 가슴이 있다고..가슴깊은곳에는 뜨거운 눈물이 있고. 상처받고 울부짖는 영혼이 있다고. 말이야...............
어는 한순간. 나 미혜는 결코 남을 원망하거나.미워한적이 한번도 없다..
주어진 인생되로. 살아왔는데. 과연 이제와서 결과는 무엇인가..가족간에 생이별..다시는 만날수 있다는 기약조차 있을지.없을지..모르는 곳으로 보내야 하는 이아픔..어떡하나..
보내고 나서. 그고통을 과연 나는 감당할수 있을런지..아~~~아~~~~죽고만 싶다..죽어 버리고 싶어..모든 고뇌의 굴래에서 벗어나고 싶구나...
내가 죽어버리면..우리 아이들은..어떻게 될까....아~~~안돼..그 불쌍한것이 천덕꾸러기가 되겠지..술마시는 아버지 밑에서. 어떻게 자랄수 있을까....절대 안돼..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들인데..
내 분신이것들인데...내 사랑인데..어떻하던. 잘 키워야 해...

11월 1일

일을 끝내고 집으로 오니..아이들이 반긴다..
아이들을 씻기고.저녁을 준비하고.. 비을 맞고 왔기에..머리을 감았다...
자리를 펴주고아이들을 재우고..피곤한데 잠이오지 않는다..
책을 찾아서 책을 봤다..최인호 작...(그대 영혼내리는 비)...라는 제목이다..
지금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이 비가 그치면. 추워 지겠지...이순간 난 저 비를 맞고 싶다..
비가 오는 거리를 뛰쳐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참는다..참아야 한다..
내일 일을 하려면..감기가 걸리면 안되니..내가 아프면. 안되니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텅빈다..어디론가 가고싶다..아무도 없는 무인도..아무도 없는 나만에 공간...세계로 가고싶다...
지금 난 넒은 공간에 홀로 서 있는 기분..발가벗은 벌거숭이로.혼자서 떨고 서있는 것 같다..
외롭다..쓸쓸하다..고독하다..힘들다..비참하다..화가난다..
왜..........왜..난 언제나 혼자 서있지..남편은 있는데.. 하긴 그사람은 없는 사람이지..
그사람은 나에게 있어 언제난 타인인것을..지금 현제..아이들 만으로도 힘든데..그사람마져도..
날 힘들게 만드는 사람인것을.....................

10월31일.

요즘들어 몇칠간 잠만 잤다..그간에 못잔 잠들을 계속해서. 잠을 잔다.
계속된 수면 상태..오늘은 정신이 맑아진 느낌이다..
애들과 지금 이생활 왜 이리 힘들까..정말 힘들다..어린나이에 짐이 너무 무겁다..
무겁다 못해..감당을 할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렸다..
하지만..내 책임..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아니 감당할수 밖에는 없는것이다..
우리 아이들에 장래..우리 아이들에 미래...과연 난 무엇을 해줄수 있을까...
너무나도 이쁜 내 아이들의 장래와 미래를 위해 난 무엇을 할수 있을까...
피가 나도록 일을하고..입술이 부르트도록..일을해도..살수가 없다...
언제까지..그사람은 날 괴롭힐까...아~~~아이들 아빠만이라도 날 가만히 나두면..살수있을텐데..
살고 싶지 않아..죽고 싶어..내가 죽으면. 우리 아이들은 어찌 될까..............
난 엄마로서 아이들에 장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길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 행복이 중요하다..내 인생보다는 내 아이들에 인생..미래..장래..무엇을 할수있을까... 언제가는 언제가는 지금에 내 고통..아이들에 고통..알아주는 날이 올까...
살아갈수록..괴롭고. 고통스러운 지난 세월들........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하루하루가 무섭고..두렵다..갈수록 비참해 간다..
사람들에게 굽실대면. 하루하루 연명을 해야 하는것인가..
그렇게 일을 해도 안되는 것인가...지금에 내 심정. 어느누가 알아줄까.....
미안하다..나의 아들아..엄마가 지금 엄마가 너희들의 장래을 위해서..무서운 결심을 한다..
젤로 힘들고.무섭고..힘든 일을 해야만 해...
너희들을 멀리 멀리............아주 멀리 보내기로 결심을 했단다..
보다 낳은 너희 장래을 위해서..모든 고통을 감수하려고 한다..
헤어지는 아픔보다..더 많은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서. 이순간 모든 고통과. 괴로움 견디리라..
이 무서움 견디리라...이 아픔 견디리라.............
우리 아들이 잘 자란다면..참고 견딜거야...
욱아...현아...부디 부디...부디..잘 자라거라........
이세상은 결코 남을 위해서 사는것은 아니다..바로 자신을 위해서 사는거야..
너희들이 잘되면 이 엄마를 위해서야 아니야..너희들 앞날을 위해서지.그러니 어떠한..어려움이
따르더라도...결코 좌절하지말고...힘껏 싸우자...
엄마가 기도할께...너희들의 곁에서 함께 있지 못하지만...마음만..함께 갈거야..
너희들이 내 곁을 떠나는 순간부터..내 마음도..함께..죽는거야..
욱아...현아..엄마나 아빠는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기에..보다낳은 여건속으로..보낸다. 지금 이순간 엄마가 할수 있는 일이란..너희들 앞날을 열어줄수 있는 여건을 찾아서 보내는것 뿐이야...나머지는 너희가 스스로 개척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부디원망은 말아다오....정말 이길 밖에 없는 것이지..모르겠구나..
왜~~~~~~~~~~~~왜......헤어져야 하는지..정말 모르겠다..
생각하고 생각했건만.......이길밖에는 없는것 같구나.......
엄마가 걸어온길..너희가 걸어가게 할수 없는것이 엄마에 사랑이고..진심이다..그리고 마음이고..
가엾은 우리 아가들..엄마는 엄마가 주어진 길을 걸어오면서..부모 원망 많이 했다.
그러기에. 엄마는 결심을 했다...너희들을 보내기로..말이야..
세상참 불공평하지..어떤집은 먹을것이 남아도는데...우린 먹을 식량조차 없으니 말이다..
원망은 말자..후해도 하지말자..주어진 운명되로..살아가자 꾸나..탓하지도 말자..
우리 욱이 현이는 잘자랄것 같애..
예쁘고..똑똑하고....착하니까...잘 될거야......분명 잘될거야...아니 잘되어야 해....알았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탓하지 마라.
마음 아픈날엔 가만히 누워 견디리라..
즐거운 날이 찾아오고야 말리니..마음은 미래에 산다.
지나치는 슬픔엔 끝장이 있게 마련.모든것은 순식간에 날아간다..
그래면. 내일은 기쁨이 돌아오는니...


산넘어 저쪽.
산넘어 저쪽. 하늘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기에 남따라. 행복을 찾아 갔건만..눈물 지우며 돌아왔네.
산 넘어 저 쪽 하늘 저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고 말들 하건만...............

9월 29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세상에~~~~~~~~세상에...아버지가..아버지가..이세상에서 안계신다니...
아버지..아버지..불쌍한 내 아버지..이제 미혜는 어떡하라구요,
그나마 저에게 힘이 되어주신 내 아버지..........오 하나님...이 죄을 다 어찌 할까요..
이제 아버지 보고싶으면..어떡해요...죄송합니다..정말 죄송합니다..용서하세요...
죄많은 자식을 용서하세요...아버지..우리 아버지..불쌍한 내 아버지...용서하세요..
이제는 천국에 가셔서 엄마를 만나서 편하게 지내시길.......
세상 모든 짐을 다 벗어 버리시고...천국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이죄많은 여식..엎드려 빕니다..우리 아버지...안녕히 가세요....
세상에 한분남은분..아버지 마져..내 곁을 떠났읍니다..그날을 생각하면서..나는 지금 내 처지을 생각한다..
정말 진저리가 쳐지도록 미치겠다..주방 찬거리.을 살려고 받아논 돈을 가지고 영남 아이 아빠가 가지고 가버렸다..아~~~~아~~~~미치겠네..
내가 잠자는 사이에 와서. 갖고 가다니..세상에 이럴수가..세상에 이럴수가......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그 돈이 어떤 돈인데..내 돈도 아니것만...
시장은 어떻게 봐야 하나..
이젠 지갑에 손마져 대다니...기가 막혀서 할말이 없다...

아버지...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부모님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나를 기르신 아버지..참으로 그립습니다..
보고싶읍니다..........그립습니다..
엄마. 아버지..지금 미혜는 너무 외롭고..힘들어요..천국에서 절 감싸주시고..
보듬어 주세요..용기을 주세요..
우리 아이들 잘 기를수 있도록..힘과. 용기을 주세요...

8월 31일

몹시도 피곤한 하루였다.저녁네 서있을 정도로.바빴다.
손이 칼에 베어 피가 나왔지만..일을 안할수가 없다.지금 내마음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기분이다. 동욱이 아빠도 자주오고.분명히 갈곳이 없어 오는줄 알면서도 화가난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때마다.더욱더 화가난다.
그렇게 갈곳이 없단말인가..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너무나 냉정하다는 느낌이다.
내 자신이 이렇게도 냉정해 지는것을 막을수가 없어
잔인하게 냉혹하게 영남씨 가슴ㅇ 비수를 꽂는다.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마음속으로 나를 미워 하겠지..그래 난 사랑하지 않아 사랑하고 싶지도않고. 미워 하고 싶지도 않아..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미워도 단지 내가 살아 숨쉬는 것이니까. 사랑할려고 노력하는 것 뿐이야..
내일일은 아무도 모르니. 그저 열심히 살아가도록 노력하는거야..알았지 미혜야..힘내..
이 괴로움 이 외로움을 나혼자 감당하며..나혼자 아이들의 방패가 되어 스스로 내 앞길 에. 횃불이 되고..아이들 앞날이 밝은 빛으로 세상에 나가도록 난 살아야 한다..
아~~~아........자 힘내고..아이들에게 저녁을 주려면..준비을 해야지..미혜야...
이세상이 널 힘들게 하고..날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날 힘들게 해도 우리 아들을 위해서 힘내자..화이팅...자..미혜야 힘내..알았지...

1967년 8월30일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울었다.자꾸만 눈물이 나온다.
난 눈물의 샘이 말라버렸다고 생각을 했는데.오랜만에. 눈물이 흐른다.
욱이가 엄마 울지말라고 한다. 잘못했다고.
정말 화가 난다. 머리끝까지.올라왔지만.참기로 했다.
실상 우리 아들이 무슨죄가 있을까...있다면. 태어난 죄밖에 없는데..
부모를 잘못 만난 죄밖에 없는것을..
미안하다..욱아.내가 무슨자격으로 너희들 혼냈수 있겠니..
난 욱이을 끓어안고..통곡을 한다..불쌍한 내 아이들..미안해.....

그리움

오늘도 하루종일 욱이 생각으로 일을 하지 못하겠네..지금 그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것인지..밥은 먹었는지..자식이란 무엇일까.??품안에 자식인가!!늘 그립고 보고싶어서..가슴을 저미는 것이 부모인가..무엇이 이토록..가슴이 저릴까..아이 생각만 하면..가슴이 쓰리고 아프다..함께 공유하지 못했던 세월이 너무도 아쉽고.억울하다..왜~~난 아이들이 보내야만 했을까...돌이켜 생각해 보면..너무도 가슴이 아프다.이제와서 새삼 느낀다..이십년의 공백을...함께 공유하지 못한 세월이 너무도.아프다..분명히..내 아들이것만...내 먼 타인처럼 느껴질까...우리 아들 생각만 해도..가슴이 터질것 같은데...함께 공유할수없다는것이 더욱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 같다...돌이킬수 없는 이십년...두번다시..돌아올수없는 그 이십년이..원망스럽다..난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무엇을 위해서..이십년을 살았을까...이제와서..후해한들 아무 소용이 없지만..다시 그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우리 아들과 함께 했던 지난 그시절로...돌아갈수 있다면..내 영혼을 팔아서라도..돌아갈거야...지옥에 악마에게 내 영혼을 팔고..우리 아들과 함께 공유하고..이야기 하고..살고싶어..여기것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살았는데..이제는 모든것이 원망스럽다.모두가 밉고..후해 스럽다..우리 아가들..내 분신들..엄마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살았던 것 같구나,..가장 소중하고..소중한 무엇을 잃어버린 느낌..내 모든것이 몸속에서 빠져 나가는 느낌을 버릴수가 없어..왜 일까......우리 아들을 만났는데...그렇게 보고싶던..내 아들을 만났는데..사람에 욕심이 정말로 끝없는것 같구나..여기서 만족하지 못하고..다른것을 요구하는 내 자신도 한심하고...하지만..욕을 해도 좋고..침을 뺕어도 좋아..우리 아들과 함께 공유할수있다면..다시 돌아갈수 있다면...어떤 댓가을 치르드라도...가고싶다...아~~~하나님..이 어리석음을 용서하세요..주님...불쌍하고 가련한 어린 양, 갈곳을 잃어버렸읍니다..길을 잃고 헤메고 있읍니다..이제는 무엇이 옳고 그릇지..정말 모르겠나이다..어둠에 빛을 발하듯이..제에 눈에 광명을 내려주소서..빛을 잃고.지하 암흑속에서 헤메고 있나이다...온갖 상념이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나이다....천주에 성모 마리아님..이제 저희 죄인을 위해 빌어주소서..밝은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 소서.마음이 악에 빠져..헤메고 있나이다..사악한 마음을 천주님의 기도로...깨끗이 씻어주소서....

2007년 4월 19일 목요일

허공

꿈이 였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 남아 기다린 마음달래보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아들..
설래이던 마음도 기다리던 마음도 허공속에 묻어야 할 슬픈 옛이야기..
스쳐버린 그날들..잊어야 할 그날들 허공속에 묻은 그 약속............

4월20일

지금 동욱이는 서울에 있다.
함께 있고 싶지만. 말이 통화지 않아서 이렇게 떨어져 있다..
지금 그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욱이 옆에서 그애을 만져보고싶은데..잠자는 모습도 보고싶고..내 눈이 아프도록 그아일 눈에 넣고 싶다..
아~~~사랑하는 내 아들..보고싶은 내 아들..너무도 그립던 아들들......
이렇게 만났지만.언어 장벽으로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것이 너무 아프다..
왜 난 영어를 배우지 못했는지..왜.......그동안 난 무엇을 했을까........
산다는것에 너무도 치우쳐. 영어한마디 배우지 못했을까.........너무 한심하고..화가난다..
나약한 내 자신에게...말을 할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비참하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어찌 해야 할찌..분명히 알았다..
우선은 영어를 배워야 겠다..욱이가 돌아가면..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것 같다...
이제부터는 분명한 삶을 살아야 겠다..
사랑하는 내 아들과 말을 하고 서로 의견을 알고. 마음을 알고 누구에게 도움이 필요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겠다...
못할것이 무엇이며...할수없는 것이 무엇인가....난 할수있어...무엇이든지..우리 아들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전화 통화 한번 못하고 무엇을 하는지 알수없다는것이..넘 힘들어 너무 힘들어.
그애랑 함께 지내고 싶어..손잡고 잠자고 싶고..끓어안고.안아주고 싶어.......
욱아..현아..내 아들 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것 같은 내 아들...내 분신..내 사랑..내 아기..
너희들은 나에 분신이고..내 사랑이고..내 아픔이고..내 슬픔이야..
너희들은 언제나 내 맘속에 살아 숨쉬는 존재고. 내가 숨쉴수 있는 존재야...
항상 건강하고..행복하고..즐겁게. 이 세상을 살아가길 엄마는 바란다..
너희들이 행복할수 있다면. 내가 못할것은 이세상에 아무것도 없어.
엄마는 이렇게 슬퍼도 괜찮아..너희가 행복할수 있다면.
엄마는 아파도 괘찮아..너희들이 행복할수있다면...난 정말 괜찮아..정말 괜찮아...
이세상에서 엄마는 울 아들들을 젤로 사랑하고..정말로 그립고. 사랑해..내 분신들.내 아픔들.
내 과거들.너희들은 엄마에 과거에 산 증인이고. 아픔이야...
지난날 그렇게 힘들었지만. 너희가 있기에.엄마는 열심히 살았던 거고.오늘에 내가 있는거란다.

2007년 4월 7일 토요일

내 생애에 단 하루 만 이라도


너를 보고네 모습 내 눈에 생생하게 새겨서머리 결 하나 까지도 다 떠 올릴 수 있는 그런 날이,너를 만져열 손가락 모두에 너의 감촉 다 기억해서스쳐 가는 바람으로도 너를 금방 알아 볼 수 있는그런 날이내 생애에 단 하루 만 이라도 있어 보았으면.....네가 하는 이야기 내 귀로 다 듣고그 뜻 하나도 빠짐 없이 다 새길 수 있는 그런 날이,네가 생각하는 것 내 마음으로 다 느껴서언 듯 보는 그 눈빛 만 으로도 네 생각 다 알 수 있는 그런 날이 내 생애에 단 하루 만 이라도 있어 보았으면.....아,그러나 너는 단 한 순간도 내 곁에 머뭇 거리지 않고바람인 듯 스쳐 지나 가는 구나.한번의 눈 마주침도손잡음도 없이...
그런 너를 끌어 안고뜨겁게 입맞춤 할 수 있는그런 날이아아.내 생애에 단 순간 이라도 있어 보았으면....

내생에 최고의 날이다가온다.
이순간이 영원하길............아....아..꿈에도 그리운 내 아들 욱이 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