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30일 수요일

5월 31일

이렇게 하루를 또 보내고 있다..
동욱이 에게 보낸 편지들을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잊으려 해도 잊을수가 없는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오지 않는 편지을 기다리면서.내가 쓴 편지 그리고 동욱이가 보낸 글들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어서 일을 하고싶다..그냥 시간이 가도록 잊고 일을 하고싶다.


해인 삼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려터니.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 일편명월만 빈 가지에 걸렸어라*^^*

2007년 5월 27일 일요일

시간이 흐른뒤에..


잠이 오지 않아 동욱이 메일을 읽어보고 또 읽어본다.
무엇이 그리 생각을 하게 끔 만들었을까?
난 여러가지 생각들로 잠이 오지 않는다. 오늘도 엄마들과 모임에서 이야기을 했지만.
정말 손님 같이 대접을 하듯 무조건 이해하고 받아들려야 하는가...
난 정말 싫다. 그렇게는 하기싫어.........내 자식인데. 어찌 손님 같이 대해야 한단 말인가............제인 정. {피의 언어} 쓴 작가 그사람은 지금 한국에서 정착을 했다.
미국으로 언니와 함께 입양간 사람인데. 언니는 그곳에서 결혼을 해서 미국에서 살고. 제인 정. 즉 정 경아..는 한국이 너무 그리워서 한국에서 정착을 하고. 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다..
한국에도 잘한다. 매우 잘하지는 않지만. 천천히 말하면. 다 알아 듣는다고 한다.
그 경아씨에게도 말했듯이. 잘나도 내 자식이고.못나도 내 자식이다.
물런 그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냈지만. 어쩔수 없는 선택인데..........
난 이렇게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면. 아니 진정으로 엄마인 생모를 이해한다면...가슴 밑바닥에서 부터 이해을 해야 한다고..
사소한 것도 이해을 못하고..더큰 일들이 닥친다면. 그때는 어찌 하겠는가..
아마도..의절을 하겠지..다시는 보고싶지 않다고..냉정히 돌아서겠지...
난 마음이 너무 아프다..
편지 내용도.그렇고..내 가족이라고..자기 엄마..날더러. 잊으라는 건가..지금 메타가 애을 쓰고 있는것 같다.
욱이와 나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고 싶어서..원하지 않아..나는 원하지 않아..
이것도 하나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인데..부딪쳐야 성격을 알고....생각을 알수있는데..아~~~~~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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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8일 금요일

내 이야기.1


지금부터 난 내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혹 나중에 내가 잘못 된다면. 이 이야기가 책으로 나오길 ....
아니면. 나중에 우리 아들이 보기를 바라면서..

난 1960년 6월에 서울 대방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많이 배우신 분이고. 엄마는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글씨를 배워서 나중에는 잘 읽고 쓰기도 했다고 아버지에게 들었다.
내 위로는 오빠가 셋이나 있다.
엄마는 내가 첫돌을 넘기고 바로 돌아가셨다..아버지 혼자서 우리 사 남매을 기르셨다..
물런 가르치고. 잘 입히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사랑으로 우리들을 키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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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0일 목요일

리아의 희미한 기억을 찾아 2


제가 새로 사귄 입양아 친구들은 제게 새로운 기관과 단체 그리고 여기 서울에 있는 다른 입양아 친구들을 소개 시켜 주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입양아들이 여기 한국에 돌아왓는지는 전 모르겠스빈다.
그리고 입양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적그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다만 제가 한구에 있다는 그 사실에 저는 아주 편안해 졌고 마침내는 "뿌리의 집"으로 갈 때 내리는 지하철 역의 이름도 발음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제가 이 입양아 공동체에서 배운 점은 진정 정치적인 입양이 무엇이며 전 세계적으로 입양아들이 그들의 부모와 친구들에게 어떠한 대접을 받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전 지금 이 자리에서 정치적인 언쟁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 매우 놀랐고. 지금 논의 되고 있는 문제에 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전 평택에 있는 고아원과 미혼모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평택에서의 시설들은 제에게 오늘 날의 저를 감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 제 생모가 입양기관이 저를 입양보내도 좋겠다는 서류에 사인한 것이 참 다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한 가정을 찾지 못하는 장애아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또 다른 경험이었습나다. 전 제가 자원 봉사를 했던 ㅇ동방사회복지회 일시보호소에 있는 아기들이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 입양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나다.
왜냐하면 단지 "아기"라는 이유 때문이죠.

때때로 저희 희미한 기억들이 제게 암시합니다.
제 인생의 한 흭이 될만한 중요한 순간들은 지나갈것임을 압니다.
제가 두려운 것은 그 순간들이 너무 빨리 지나가 제가 아주 중요한 사건들을 그저 스쳐 지나가지나 않을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이미 지나간 후에야. 많은 세세한 부분들을 다 놓치고 난 후에야 그것들을 다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런. 전 한국에서 지낸 제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의 시작을 그 갈색 파일에 의지해야만 합니다.
제가 다시 그 파일을 검토했을때 제가 오직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역사의 시초가 그런 덧없음. 즉 반으로 접혀져 짖어질 수 있은 종이 쪽지에 담겨 있는 게 얼마나 현실적이지 못한가 하는 것입니다.

사회 복지사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제 귀를 통과하기 전에 잠간 멈추는 것처럼 들립니다.
마치 그 단어들이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묘사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 파일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을 얼마나 많이 드었는지는 몰라도. 그 안에서 애기 하고 있는 내용이 나에 관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 파일 속에서 진자인 것 같은 면은 오직 하나. 제가 1999년 부모님과 함게 한국을 방문했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그런데 고아가 된 아기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아이들의 생김새와 아이들이 곰지락거리는 모습들을 나의 어릴 적 모습과 견주어 보아가며. 아기들의 조그마한 손가락을 쥐어보고, 나의 과거와 연결이 되는 것 같은 느김을 처음으로 느꼈을 때, 그리고 나 자신을 작은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동일시 할 수 있었을 때. 아이와-한 때의 "나"였지만 베일에 가려진 것만 같았던 그 작은 아이와. 한 때 내가 살았던 한국이 인간적이고.인격적인 형태로 드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방문 후에. 저는 한국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최초의 역사 후에 축적된 인생의 기억들에 감사를 드립니다.
전 제 파일 외에도 읽어야 할 한국의 역사가 있고. 만나야 할 나와 같은 입양아들이 있으며 또한 갈색 파일만이 자신의 지금가지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고아들로 가득찬 고아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언젠가는 저는 제 인생이 바뀌기 전의 그 초기의 제 살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저는 한국과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데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하겠습니다.

입양 과정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저의 프로텍트를 통해서 제가 의도하는 바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큰 무리를 만들고. 서로 엮여진 사람들이 인간답게 될 수 있는 하나의 활동무대를 제시해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머리 속에서 그려내는 입양이라는 것은 고아에서 입양아로 연결이 이루어지는 때를 말합니다.
고아들이 더 이상은 입양아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는 그들ㄹ을 어던 이야기와. 역사와의 관계 속에서 보게 되고 유망한 장래와 연결을 지어서 하나의 개체로 보게 됩니다..
현존하는 입양아들은 우리들도 고유의 품성을 지닌 똑같은 사람이며. 모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힘든 인생과 싸워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줍니다.
이런 맥락에서. 고아를 보면서 사육장이나 교역물품을 연상하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 입니다.
왜냐하면 상품이나 농장의 동물들은 예술가. 작가. 의사. 변호사. 교사 등등으로 성장 발전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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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9일 수요일


우리는 매일 많은 말을 듣고 또 하고 산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의 수 만큼이나 말의 양과 질도 매우 다양하며 인간들기리의 좋은 관계도 나븐 관계도 말에서 비롯될 때가 많다.
말을 할 수 있음에도 오직 침묵과 기도의 삶에 몰입하기 우해 곡 필요한 말은 수화로 한다는 엄격한 관상수도회인 트라피스트 수도자들은 말을 안하는 그만큼 말로써 죄를 지을 확률도 적어지겠구나 하고 생각해 본 일이 있다.
늘 가가이 대하는 가족. 친지. 이웃기리도 서로 만만하게 여겨져서 주고받는 말들이 때로는 깊은 오해와 상처를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있고. 초면에 말을 잘못해서 좀체로 좋은 관계가 이우어지지 않는 경우를 보더라도 참으로 말을 잘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병고에 시달리며 누워 있는 이에게. 사랑하는 이와의 사벼의 슬픔으로 괴로워 하는 이에게 또는 사업에 실패하거나 시혐에 떨어져서 낙담하고 있는 이에게 적절한 위로의 말을 찾아 하는것은 어던 좋은 일이 있을 때 축하나 감사의 말을 건네는 것보다 훨신 어렵게 느껴진다...
곡 합당한 말이 없는 것도 아닐 텐데 막상 표현을 하자면. 생각이 안나고 말이 궁해 답답해지는 것을 나도 열러 번 경험했다.
"어설프게 위로한다며 오히려 상처를 주기보다는 아예 입다물고 가만히 있는 게 더 낫지 않을가요?'하는 말도 종종 듣게 되지만 이는 너무 소극적인 태도인 것 같다.
우리가 글시를 배우고. 피아노를 배우고 뜨개질을 배우듯이 삶의 질을 높여주는 좋은 말을 배우는 데도 많은 연구와 노력의 연습 과정이 곡 필요한 것이 아닐가?
평소에 좀더 관심을 갖고 우리말 공부를 하고. 남의 말을 열심히 듣고 좋은 책을 통해서 좋은 말을 배우며실제로 잘 활요하려 애슨다면 우리 자신도 모르게 매일의 언어 생활이 좀더 아름답고 깊이 있게 변화 되리라 믿는다.우리의 품격을 떨어드리는 저속한 말. 너무 피상적이고 충동적이고 겉도는 말. 자기중심적이고 무례한 말을 습관적으로 하지 않으려면.우리 마음과 삶의 태도부터 맑고.곱고. 선하게 가꾸어야 하리라. 우리의 말이 향기로우면 우리의 삶 도한 향기로워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노력하는 수행자 의 모습으로 매일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가금 이런 기도를 해본다.

매일 우리가 하는 말은 역겨운 냄새가 아닌 향기로운 여운을 남기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말들이 이웃의 가슴에 꽂히는 기쁨의 꽃이 되고. 평화의 노래가 되어

세상이 조금식 더 밝아지게 하소서 누구에게도 도움이 될 리 없는
험담과 헛된 소문을 실어나르지 않는 깨긋한 마음으로 깨끗한 말을 하게 하소서.

나보다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는 사랑의 마음으로 사랑의 말을 하게 하시고.
남의 나븐 점보다는 좋은 점을 먼저 보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게 하소서.

매일 정성것 물을 주어 한포기의 난초을 가꾸듯 침묵과 기도의 샘에서 길어올린
지혜의 맑은 물로 우리의 말씨를 가다듬게 하소서 겸손의 그윽한 향기 그 안에 스며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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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뉴욕의 길거리를 헤메도.

서울의 길거리를 헤메도.

베이징의 길거리를 헤메도

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파리의 길거리를 양어머니와 걸어도

런던의 길거를 양어머니와 걸어도

밀라노의 길거리를 양어머니와 걸어도

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난 내가 찾고 있는 것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리아의 희마한 기억을 찾아.

제가 태어났을 때 제게 주어진 이름은 이현주입니다.1985년6월15일 생후 15개월 되었을 때 제게 다시 리아 현주 배럿이라는 이름이 주어졋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경험하는 첫번재 것들. 예를 들면 첫 걸음마. 최초로 먹은 음식. 그리고 최초로 말한 단어 이런 것들 대신에 저는 최초로 갈색 파일을 가졌읍니다. 그 파일 겉 면에는 나의 번호가 있었고. 이 파일은 비슷한 종류의 수천개의 다른 파일들과 함께 어떤 방에 저장되어 있었죠

저에겐 그 파일만이 어디서 제 역사가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제가 유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저의 흔적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입양된 많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은 두 사람은 매우 가난합니다. 겨우 자신들만을 부양할 수 있는 처지라 아이를 입양보내기로 합니다.

전 입양된 이후로 한국을 몇 번 방문했습니다. 제 양부모님게서는 제가 어렸을 때 약속하신 대로 제가 15살 이 되었을 때 저의 고국을 방문하게 해 주셨습니다. 1999년의 타는 듯한 더위가 한창인 여름이었읍니다.이 여행은 제가 부모님과 함게 도착한 많은 여행지 중 한 곳이었지만. 저희가 한 가족으로서 같이 한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양부모님은 그 다음해에 이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두 분이 없었다면 한국 여행이 한국 여행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아직감정적으로 충분히 성숙되지 못했었지만. 제가 제 조국과 다시 합체를 이루기에 아주 딱 맞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성장하면서 저는 한국 문화를많이 접할 수 있었읍니다. 또는 입양 공동체와도 접촉이 있었읍니다.최초의 고국 방문이 제가 다양한 한국 입양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 1999년 여름에 저희 8명의 입양아들과 가족들은 가라오케가 장착되 마치 멕시코의 피에스타 스타일저럼 보이는 내부를 한 버스를 타고 한국을 순례했습니다. 그때는 끝이 없어보니는 사찰과 궁.탑.그리고 박물관을 방문햇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한국의 대중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읍니다.H.O.T의 음악을 들었고 잡지들을 사 모앗으면. 드 당시에 저희에게 적합하지 않은 비디오를 빌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 경험은 적어도 저에게는 한국에서 제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는 것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관광지는 아마도 부모님에게 딱 맞는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최신 아이들 스타와 이태원에서 구입한 자질구레한 장신구에 대한 관심은 제가 개인적인 제 역사를 탐구하게 되었을 때 시들해졌습니다. 제가 최초로 머물렀고 입양을 주선했던 동방사뢰복지회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제 파일에 보관해둘 사진들을 가지고 갔었습니다. 전 제 주소와 전화 번호도 함께 기입했는데. 언제가 다른 곳에 사는 누군가가 저에게 관심을 가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제 생각에 그 누군가 는 그 파일이 생기기 이전의 잃어 버린 제 삶에 꼭 들어맞는 퍼즐을 제게 줄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전 쓰라린 눈물을 참기 위해서 진땀을 흘렸는데. 미혼모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그리고 제 위탁 부모님을 만났을 때 다시 눈물이 나왔읍니다.

전 다시 2004년 겨울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밖에는 머무르지 않앗습니다. 대학생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일종인 "바다에서의 한 학기"라는 크루즈 배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에 저희는 짙은 안개가 낀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앞이 보이지 않아서 저희는 하루 종일 헤맸었고, 한국에서 그렇게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전 울고 말았습니다.

전 제 친구들에게 김치. 갈비 그리고 불고기를 소개해 주었고.제가 조금 알고 잇는 한국의 음식과 식사 예절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전 제 친구들이 한국의 음식. 문화. 예술과 경치를 극찬해 주자 제고국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습니다.하지만. 며칠이 지나자.전 뭔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지난 여름에 저는 가장 친한 친구 클라우디아와 함께 스페인의 빌바오와 샌 세바스티앙까지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전 "내년에 무엇을 하고지낼까"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점점 대학 졸업반이 다가오고 있었고 졸옵을 위해 필요한 2가지 졸업 프로젝트를 위한 영감이 필요했었습니다.클라우디아와 함게 맣은 인도주의와 박애주의에 관한 문제들을 의논한 후에 저는 다른 곳에서 세상을 구하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먼저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설득으로. 아버지는 뉴욕 발 서울행 티켓을 발급 받아 주셨습니다.그래서 학부의 마지막 겨울 방학을 한국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얼마나 시적으로 들리는지요!!미국을 일컫는 "인종의 도가니"라는 마음을 상게하게 하는 표현과는 달리 청명한 풍격 속으로 미끄러지듯 두드럽게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내는 가락지 같지 않습니까""뿌리의집"에서 저는 전 세계에서 온 한국 입양아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전 제가 한국인들이 가득찬 집안에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이런 현상은 전에는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벽에 아가에게

새벽에 아가에게

정호승

아가야 햇살에 녹아내리는 봄눈을 보면.
이 세상 어딘가에 사랑은 있는가 보다.

아가야 봄하늘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면.
이 세상 어딘가에 누눌은 있는가 보다

길가에 홀로 핀 애기똥풀 같은
산길에 홀로 핀 산슴바귀 같은

아가야 너는 길을 가다가
한 송이 들꽃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라.

오늘도 어둠의 계절은 깊어
새벽하는 별빛마저 저물었나니

오늘도 진실에 대한 확신처럼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은 아직 없나니

아가야 너는 길을 가다가
눈물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라......

입양의 날.

입양의 날이라. 동방사회복지을 다녀왔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을 했다. 아는 엄마들이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우며. 간담회을 가졌는데..정말 행복해 보였다
물런 그중에 가정사에 문제가 많은사람들도 있었지만..나름대로 행복하게 가정이 가꾸어 가는모습이 정말로 보기 좋았다.
오늘도 욱이에게서는 편지가 없다. 정말 그렇게 서운했을까?
이제는 기다림을 접어야 하는가? 모르겠다. 무엇이 그리도 서운했는지?
이럴때는 정말로 미치겠다. 차라리 말이라도하면. 변명이라도 하겠는데. 편지을 보내도 답장이 없다는것이 정말 견디기가 힘들다.
욱아. 정말 엄마를 잊을거니. 이렇게 많이 서운했니.내가 그렇게 행동한것이 너에게 충격이였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래 서운했을거야..미안하다.
정말 정말이지..이제는 욱이 생각을 접어야 하는가. 이제는 살아있는것으로 만족을 해야하는가?
사랑하는 욱아..
널 만나서 엄마는 진짜 행복했다..너가 머문 보름을 정말 꿈같이 지냈다.
정말 행복했고.너가 반듯하게 자라서 고맙고. 대견하고.너무 사랑스러웠다..고맙다. 욱아. 현아.
이제는 너희가 살아있는것으로 만족할께..더이상 욕심을 내지 않으마.
너도 많이 힘들겠지.양쪽에 부모을 두고..갈등과. 어느 한쪽을 선택을 해야하는것도 힘들지.
물런 양쪽을 다 사랑한다하지만. 그것이 힘들거야..
엄마가 어떡하면. 좋겠니??
너희들을 잊는것이 너희가 행복할수있을까?
다시 옛날로 돌아가서. 우리가 서로 몰랐던 시절로 가야 좋겠니..
미안하다..이럴바에는 차라리 몰랐던것이 너희들을 위해서 좋을텐데..
정말이지 모르겠다.
난 너무 행복하고.온세상이 다 내것 같은기분이였는데..
사랑하는 욱아..보고싶은 욱아..내 아들 내아들..현아 욱아..내 아들..
이제는 여기서 멈춰야 하는거니..더이상은 안되는거니..
엄마를 미워하지마..제발 미워하지마.......이엄마도 불쌍하지 않니..너희들을 보내고 그많은 세월을 눈물과 한숨으로 살았던.엄마가 불쌍하지 않니..
정말이지 마음을 비운다고 맹세을 했지만. 그것이 잘 안되는데..어떡하니..
너에게 편지을 쓰고 싶어도..무슨말을 해야할지 어떡해 말을해야 하는건지.망서려진다.
그래서 내마음과. 아픔을 여기에다 적어보는거야..
너가 읽어보지 못하겠지..아마도..이렇게 세월이 흐른다면.이 블로그도 끝이다..
더이상 너희들을 아프게 만들지 않을것을 맹세한다..
두번다시..내 맹세코..너희들을 아프게 하지않을것이야..
너희들이 날잊어야 한다면. 그렇게 하렴..하지만..말이라도 하고 하렴..그래야 내가 미련을 갖지않겠지..
그러지 않으면..난 미치고 말거야..지금 이순간..참기가 너무 힘들다..괴롭고.외롭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그토록 소원하던.내 아들을 만나서.. 이렇게 헤어진다면..난 어떡해 사니.
무슨마음로 세상을 살아간다니..
이렇게 두서없이 글을 써본다..이것은 욱이나.현이가 읽어볼수가 없다는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2007년 5월 4일 금요일

철이오빠 장례식장에 다녀와서.

철이오빠 장례식에 다녀왔다.
생각해보면. 슬픈데..모두다 웃는다..오랜만에 만나서 웃는 모습이 참 좋은데..
그래도 슬픈날인데..호상이 아닌데..모두 웃는다..즐겁다는듯이..그래 죽는사람만 불쌍하다.
아득하게 잊어져 간다..무섭다.사랑하는 사람들에 뇌리에서 잊어진다는것이 두렵다.
나도 언제가는 잊어져 가는 사람중에 한사람이 되겠지..비롯 사랑한다고 해도.언제가는 잊어져 가겠지...생각만 해도 가슴이 메어진다.
난이는 오지 않았다..우리가 갔는데도..사우나 에 간다고..참으로 웃음이 난다.
무엇이 잘못된것일까..서로 무슨 오해을 했기에..친오빠가 마지막으로 가는길 조차 오지않은것인지..이해을 할수가 없다..
아무리 화가나고..서운하다 한들..마지막인데..정말 보고싶어도 볼수없는 오빤데..
왜 오지 않는것인지..사우나..정말 사우나를 갈정도로..그렇게 무심해 질수있을까...
암만 생각해 보아도..그것은 아닌것 같은데..사람들이 무섭고..싫다..정말 인간이 싫었는데..
그래도 좋아할려고 노력했는데..난이야..그것은 아닌것 같다..아무리 생각해도 너가 너무한것 같구나..오늘이라도 찾아가렴..꼭 그렇게 했으면..좋겟다..
그래도 오빠.마지막 길이 아니겠니..불쌍하게 살다간 오빠를 생각해서..꼭 찾아보렴..
장례식에 갔다 오는길에 시연아빠랑 많은 이야기을 했다..
밉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미운사람인데..그래도 미워할수가 없다.
아니 미워하지않을려고 노력한다..내가 이제와서.남남이 된들 무슨소용이 있을까...
내가 사랑한것 만큼..앞으로도 노력을 해야겠지..그래 앞으론 열심히 사랑하자..
옛날에 그사람을 몹시 사랑했듯이.사랑하도록 노력하자..
날 힘들게 하고..서운하게 하고..아프게 했지만..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데..좀더 참고 살아야 겠지.. 그래도 날 사랑하는 사람인데..이세상에서 그사람만큼 날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데..
이제는 나에게는 시연아빠랑.시연이 밖에는 없는것 같구나..
우리 아들도..날 잊어가겠지..조금씩.아주 조금씩.......기억속에서..지워가겠지..
정말 난 무엇을 위해 살아왔을까...새삼 의문이 생긴다.
정말 난 반쪽인생을 산 것일까......반은 아이들에게.........반은 시연아빠에게..그리고 보니 어느 한쪽도 제데로 한것이 하나도 없는것 같네..
시연아빠 미안해요..앞으론 정말 잘할께요...정말로 노력할게요....
지금부터 시작할거야..공부도 다시 시작하고..열심히 노력할거야..나에게 실망하지 않게말이야.
이제는 모든것을 다 잊고..욱아.너에게 연락이 없다면..엄마도 잊을거야..
잊지못하겠지만..죽어도 잊지못하겠지만..적어도 노력은 할거야..
너가날 잊는다면.말이다..아무리 슬퍼도.울지않을거야..널 붙잡지도않을것이고..너희들에 행복을 위해서..놓아줄거야....그것을 너희가 원하는것이라면..난 아무리 슬퍼도.가슴이 아파도.절대로 울지않을것이다..난 다시한번 마음을 다짐한다..
절대로 어떻한 이별이 온다해도..참고 견디기로..다짐한다..
너에 편지가 너무 냉정해..먼저온 편지하고는 너무 틀려..절제가 있어..이것이 나만에 착각일까..
아니야..절대로 아니야..이번에 욱이는 조금씩 냉정해 지려하겠지..
그러지 말거라..절대로, 엄마는 널 붙잡지 않아..너에 선택을 난 지켜줄거야..
난 욱이에게 편지을 쓰고 싶은것을 참고..이렇게 블로그에 적어본다..
하고싶은말 모두 여기에다 적어놓을거야..이담에 우리 아들 한국어 잘하면. 읽어보겠지..
그때 내맘 모두 알수있게 말이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어쩌면. 영원히. 읽어볼수없을지도 모르지...
한국어를 배울지 그것도 아직은 미지수니.........
하지만 한가닥 희망을 꿈꾼다...꼭 배울거라는것을...............

2007년 5월 3일 목요일

기다림..

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무작정 기다려야 하나.........한없이 기다리고 기다리것만......세월이 날 기다려줄까......
가는세월에. 나 어떡해 살아야 하는가......마냥 기다리면서 살아야 하나..........
내 기다림에 끝은 어딘가.........내 그리움에 끝은 진정 어딘가...........
많은 날들을 울고. 기다리고..그리워 하고. 살았는데.. 아직도 더 남아있는가.............
정말 슬프다..내 죄가 이리 클줄은 정말 몰랐다........모든것이 내 죄인것을..내가 받아야 할 죄인것을.........누굴 탓할수 있으랴.............
죄값을 치루어야 할것이다...아직도 남아있는 죄값을..........내가 죽는 날까지 그 죄을 그 죄의 값을 받아야 겠지..........모든것이 허망하고..슬프고..아프고..힘들지만..난 견디리라..
난 일어서리라...........좌절하지 않고..그 슬픔을 직시하고. 견디면서..홀로 서리라.
인간은 언제나 홀로 서야만 하는것인것을..........늘 혼자 아파하고.늘 혼자 슬퍼하고..그렇게 살야야 한다면..나역시 그러하리라.............

한국의 소주 참이슬과 동욱

하하 우습다. 우리 아들 모습이 담배물고. 소주병 들고 있는 동욱이 모습 하 하 하..
그래 이렇게 웃고 살으렴..이젠 더이상 슬퍼하지말고. 밝고 명랑하게 살으렴..
엄마는 우리 아들이 웃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대견하고..
너가웃으면. 내 마음이 너무 좋아..너에 웃는 모습이 엄마 심장을 멈추게 한다.
사랑하는 내 아들..꿈에 그리던 내아들..난 너무 행복했다..
온통 세상이 장미빛 으로 물들이고 있던것 같아..
이젠 엄마도 웃으면서 살수있을것 같아...진심으로 너가 행복해 보여서야..
우리 이제는 지난날들을 모두 잊자..이제는 앞으로 올 미래만 생각하자구나..
아..아..내 아들욱아.사랑한다..현아. 사랑한다.시연아. 사랑해..난 너희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이제는 아무것도 두렵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아..난 열심히..내 앞에 장애물을 건너면서.
새로운 희망에 꿈을 꾼다..
사랑하는 내아들들아..이제는 너희들도 가정을 갖고 한여자의 남편으로서. 또 자식을 낳으면.아이들에 아버지로서. 살아가겠지..부디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가 되렴..엄마는 희망한다..
두번다시 슬픔을 간직한체 인생을 살지말자..이슬픔은 엄마 하나만으로족해..더이상 슬픔이 없는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너희들이. 정말 행복할수 있다면.내가 뭣할것이 하나도 없어. 난 너희들이 행복할수있다면. 어떻한. 희생도 할것야..
그옛날 내가 그렜듯이..앞으로도 할것이며..할거야..분명히..너희들이 행복할수있느냐의 조건이지만..
절대 후해하지않으것이며. 너희들이 날 어떻게 받아드린다 해도..절대로 후해하지 않아..어쩌면.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다시 시작된다해도..난 후해하지 않을것이야......
이번에 우리 아들이 많이 서운해서 프랑스로 돌아갔다..나한테 많이 많이 서운했다는것을 알지만..맘이 많이 아파서 돌아갔지만..
이제는 후해을 해도 소용없음을 알아..지난날들을 돌이킬수 없듯이..이것 또한 돌이킬수없는 문제..
너가 받아들이고..이해을 원하는 수밖에..너가 이해을 할수없다면. 그것 또한 어쩔수 없지..
미안하다..이제는 미안하다는 말 하지않도록 해야지....정말 너희들을 사랑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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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일 수요일

세계꽃박람회장에서.사랑하는 내 아들과.

지금처럼 행복할수 있다면..아.....아..영원히..행복할수있다면..얼마나 좋을까....
욱아..엄마는 너무 행복해..정말 이때만큼 행복한적이 또 있었을까.....
너무 행복해서 너무 행복해서..이대로 영원히 행복을 간직한채 죽을수만 있다면..좋겠다..
하지만. 간사한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또 다시 너에게 상처을 안겨준것을 미안해..
너에게 편지을 보내지 못하고..이렇게 엄마 블로그에다 적어본다.
내 심정. 내 마음.을.욱아. 정말 미안해..이때을 생각한다면. 모든것이 다 부질없는데..
그러지 못한 내 짧은 생각을 후해한다.
난 너가 상처을 더이상 받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내가 아플께..넌 더이상 아파하지마.
모든것을 다 이엄마가 대신 받을께..알았지..
대신 너희들은 장미빛 인생을 살도록하렴..좋은것만 생각하고. 행복하게..살아가도록해..
내 아들 욱아..현아......아...........아..욱아..현아..내 아들 욱아.........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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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에서 아들과 함께..

사랑하는 내 아들 욱아.
엄마에게 많이 섭섭했지..미안하다.널 그렇게 보내서.좀더 널 포근하게 안아주지 못해서.
모든것들이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것을..왜 그당시는 그것을 참지 못하고.널 힘들게 했는지..
허나..엄마가 아무리 잘못을 했다한들..너에 잘못은 엄마가 알려주는것도.엄마가 해야할 의무야..
난 널 분명 사랑해..하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모든것들이 감추워 지진 않는다.
너가 이해을 못한다면. 그것은 할수없는거고.난 내가 살던 방식을 멈출순 없는거야.
우리 아들이 엄마를 조금만 이해을 한다면.좋을텐데..그것도 엄마 바램이겠지....
내가 너희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말고..원하지도 말고.요구하지도 않을거라 맹세을 했지만...그렇게 못한것을 후해한다..
허나 너가 내 아들이기 때문에. 한거야..남같은면..뭐하고 그렇게 하겠니 그러거나 말거나지..내 아들이. 남들에게 손가락받는것이 죽기 보다 싫었다면..이해을 할까....................
우리 아들 생각하니..엄마가 지운죄가 너무 크다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구나.
너무도 큰죄을 말이다.비롯 너희들이 많은것을 배우고..훌륭하게 자랐다고 하지만..
한국이라는것에 그렇게 이방인이 될줄몰랐다...엄마는 그것 까지 생각하지 못했다는것을 인정하마..
그곳에서도 이방인..여기서도 이방인..어쩌면. 좋을지..우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우리나라 정책이 너무 밉다..
이럴때..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해야 할것이 무엇일까...엄마가 어떡하면. 좋을까..........
분명이 내 아들이고..한국사람인데...넌 그것을 거부하는거니..아님..너역시 어떡할수가 없기에..포기하는거니..이것은 우리들에 문제만이 아닌것 같구나..모든 사람..아니..우리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 문제겠지.....
사랑하는 욱아..현아..
우린 이것을 극복해야 만 한다..이런것들은 사랑으로 이기고..지금부터는 사랑으로 모든것을 이해을 하고 감싸고.토론을 통해서 감정을 다스려야 한다고 엄마는 생각한다..
물런 힘들고. 어렵지만..또 많은 희생. 그리고 댓가을 지불해야만 하지만..우린 해내야 한다..
앞으로 이십년..과연. 엄마가 그때 까지 살수있을까...가만히 생각해보니..이십년후는 엄마나이..70십을 바라보는데..
두렵다..모든것이 두렵고..무서워..이대로 영원히..가슴에 묻고 지낼까..이대로 영원히 널 만난것만으로 만족하고.묻어버려야 하나.......
지난 이십년이 너무도 한스럽다..한순간에 선택이..모든것을 잃어버린 지금 과연 엄마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묻고싶다..
욱아.현아...그립고 그리운 내아들.......20년 공백이 무섭다..그래도 낮설지 않은 내아들의 모습........정말 사랑스럽고..대견하고..장한 내아들인데..마음한번 표현못하고...말한마디 제대로 나눠보지 못하고.그냥 널 보내야 하는 내마음이 무척 아프고..괴롭고.. 너무 힘들었다.
꿈에서도 그리워 하던 아들을 언어문제로..대화을 제대로 하지못하고..난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먹고사는것만 생각을 했지..왜.........왜 오늘에 이런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했을까...
당연히 욱이가 한국어를 할것이라 생각만 했지..내가 외국어을 배워두어야 한다는것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너무 한심하고..한심하다.........
이런내가 너무도..못나고..생각이 부족한 내 자신을 탓한다..
하지만 이제와서 후해을 한들 무슨소용이 있겠니...지금부터 시작을 해야겠지..
욱아..엄마는 삶에 의욕이 넘친다고 했지..지금부터 할일이 많아..돈도 벌여야 겠지만..이제부터는 영어를 배울거야..
너희들과 의사 소통이 되기 위해선..지금부터 노력한다..
목적이 생겼으니..너희들과 대화을 하기 위해선..아마도..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해야지.
우리가 대화을 할수있다면. 이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은것들인데..아~~~~~~아..내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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