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9일 수요일

리아의 희마한 기억을 찾아.

제가 태어났을 때 제게 주어진 이름은 이현주입니다.1985년6월15일 생후 15개월 되었을 때 제게 다시 리아 현주 배럿이라는 이름이 주어졋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경험하는 첫번재 것들. 예를 들면 첫 걸음마. 최초로 먹은 음식. 그리고 최초로 말한 단어 이런 것들 대신에 저는 최초로 갈색 파일을 가졌읍니다. 그 파일 겉 면에는 나의 번호가 있었고. 이 파일은 비슷한 종류의 수천개의 다른 파일들과 함께 어떤 방에 저장되어 있었죠

저에겐 그 파일만이 어디서 제 역사가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제가 유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저의 흔적이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입양된 많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와 비슷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은 두 사람은 매우 가난합니다. 겨우 자신들만을 부양할 수 있는 처지라 아이를 입양보내기로 합니다.

전 입양된 이후로 한국을 몇 번 방문했습니다. 제 양부모님게서는 제가 어렸을 때 약속하신 대로 제가 15살 이 되었을 때 저의 고국을 방문하게 해 주셨습니다. 1999년의 타는 듯한 더위가 한창인 여름이었읍니다.이 여행은 제가 부모님과 함게 도착한 많은 여행지 중 한 곳이었지만. 저희가 한 가족으로서 같이 한 마지막 여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양부모님은 그 다음해에 이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두 분이 없었다면 한국 여행이 한국 여행답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아직감정적으로 충분히 성숙되지 못했었지만. 제가 제 조국과 다시 합체를 이루기에 아주 딱 맞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성장하면서 저는 한국 문화를많이 접할 수 있었읍니다. 또는 입양 공동체와도 접촉이 있었읍니다.최초의 고국 방문이 제가 다양한 한국 입양아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 1999년 여름에 저희 8명의 입양아들과 가족들은 가라오케가 장착되 마치 멕시코의 피에스타 스타일저럼 보이는 내부를 한 버스를 타고 한국을 순례했습니다. 그때는 끝이 없어보니는 사찰과 궁.탑.그리고 박물관을 방문햇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한국의 대중 문화에 더 많은 관심이 있었읍니다.H.O.T의 음악을 들었고 잡지들을 사 모앗으면. 드 당시에 저희에게 적합하지 않은 비디오를 빌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 경험은 적어도 저에게는 한국에서 제 또래의 다른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는 것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관광지는 아마도 부모님에게 딱 맞는 곳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최신 아이들 스타와 이태원에서 구입한 자질구레한 장신구에 대한 관심은 제가 개인적인 제 역사를 탐구하게 되었을 때 시들해졌습니다. 제가 최초로 머물렀고 입양을 주선했던 동방사뢰복지회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제 파일에 보관해둘 사진들을 가지고 갔었습니다. 전 제 주소와 전화 번호도 함께 기입했는데. 언제가 다른 곳에 사는 누군가가 저에게 관심을 가지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제 생각에 그 누군가 는 그 파일이 생기기 이전의 잃어 버린 제 삶에 꼭 들어맞는 퍼즐을 제게 줄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전 쓰라린 눈물을 참기 위해서 진땀을 흘렸는데. 미혼모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그리고 제 위탁 부모님을 만났을 때 다시 눈물이 나왔읍니다.

전 다시 2004년 겨울에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밖에는 머무르지 않앗습니다. 대학생 해외연수 프로그램의 일종인 "바다에서의 한 학기"라는 크루즈 배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에 저희는 짙은 안개가 낀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앞이 보이지 않아서 저희는 하루 종일 헤맸었고, 한국에서 그렇게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전 울고 말았습니다.

전 제 친구들에게 김치. 갈비 그리고 불고기를 소개해 주었고.제가 조금 알고 잇는 한국의 음식과 식사 예절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전 제 친구들이 한국의 음식. 문화. 예술과 경치를 극찬해 주자 제고국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습니다.하지만. 며칠이 지나자.전 뭔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지난 여름에 저는 가장 친한 친구 클라우디아와 함께 스페인의 빌바오와 샌 세바스티앙까지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전 "내년에 무엇을 하고지낼까"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점점 대학 졸업반이 다가오고 있었고 졸옵을 위해 필요한 2가지 졸업 프로젝트를 위한 영감이 필요했었습니다.클라우디아와 함게 맣은 인도주의와 박애주의에 관한 문제들을 의논한 후에 저는 다른 곳에서 세상을 구하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를 먼저 알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설득으로. 아버지는 뉴욕 발 서울행 티켓을 발급 받아 주셨습니다.그래서 학부의 마지막 겨울 방학을 한국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얼마나 시적으로 들리는지요!!미국을 일컫는 "인종의 도가니"라는 마음을 상게하게 하는 표현과는 달리 청명한 풍격 속으로 미끄러지듯 두드럽게 떨어지며 맑은 소리를 내는 가락지 같지 않습니까""뿌리의집"에서 저는 전 세계에서 온 한국 입양아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전 제가 한국인들이 가득찬 집안에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이런 현상은 전에는 결코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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