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전 아이들을 보내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제가 어린시절은 부유하지도 . 않았고요.. 어린시절이 행복하지도 못했지요.
전 두살적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밑에서.. 그리고 오빠들 밑에서 자랐습니다.
막내로..
초등교육도 받지 못했고..떠돌이 생할. 아버지가 절 데리고 이리 저리 떠돌이 생할을 했고.
하루에 밥을 먹을곳도 없어서 굶기를 밥먹듯이 한것 같아요.
하지만 그때는 우리나라 인심이 좋아서 아버지는 약주를 전 밥 한끼 정도 얻어먹을수가 있었답니다.
아마 그때 내 나이 9홉살적이였던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부산에 내려갔는데. 부산에는 내 큰 고모가 살고 있었다.
난 처음보는 큰 고모지만. 그 고모를 붙잡고 아버지 따라서 안간다고 울고 불고 했다.
너무도 철없고. 어려서 그랬을거다..아니면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너무 힘들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근데 그러한 행동을 한것 때문에..난 더 큰 고통을 당해야 했다.
큰 고모네는 나랑 같은 동갑아이가 있었고..그 위에 언니가 있었다..물런 오빠도 있었고..
동갑아이에게..난 설움을 가슴에 맺힐정도로 받았다.
고모는 한복을 만드시는 일을 하시고..난 식모처럼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로. 밥을 먹을려면..사촌이..못 먹게..했다.
밥 상밑으로 내 허벅지을 꼬집고. 난 울지도 못하고. 밥을 먹지도 못하고..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밤이되면..부산 바닷가를 얼마나 엄마를 부르면서 울었는지..아버지도 부르고.왜 아버지를 따라서 안갔는지..너무도 후해을 했다..
그렇게 일년정도 보내고..내 큰 오빠가 날 데리고 왔다..
우리 식구는 다시 합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일년을 넘게 눈치밥을 먹다보니..눈치만 보는 날 아버지는 보시고..많이 우셨다..
항상 나가서 얻어맞고 들어오는 날 보고 아버지는 술잡수시고는 우시는 거 였다..
그렇게 나는 성장을 했고.. 그러던 어느날 우리 아이들 아빠를 만났다.
그사람 은 고아였고..갈곳이 없는 사람이였다.
왜 그렇게 불쌍하게 보이던지..난 그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고 사랑인줄 알고 동거을 시작했다.
집에서는 반대를 하고..엄마 없이 큰 내가 좋은곳으로 시집가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미 난 임신을 했고..그것이 내 큰 아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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