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6일 목요일

내 이야기.

카페에다가 쓴 글을 여기에다가 올렸야 겠습니다.
동욱아. 그리고 현아.
엄마는 그렇게 너희들과 살았단다. 동욱이가 어렸을적부터. 엄마가 해준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고.
늘 고생만 시켰지.
그러다 보니. 아빤 을지로에 있는 인쇄소골목이 있었다.
그곳에 배달하는 사람으로 취직을 했고. 그곳에서는 하루 하루 \일당을 받았다.
일당을 받아서 하루 하루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면서. 널 키우고 있었다.
집세을 못 주어서. 밖에서 문을 잠그고. 방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던 적도 있었고,.,.
아빠 친구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갈곳이 없다고. 우리 집에서 잠을 자고. 물런 자는 것 까지는 얼마든지 참을수가 있었는데. 밤이 되면 엄마는 무서웠어.
그 친구라는 사람이 엄마를 건들려고 하니. 방은 하나고. 방도 좁고.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아빠에게 말하면. 싸울것 같았고. 그사람도 아빠처럼 고아였거든.,,,,,
엄마는 무섭고. 괴로웠지. 그때는 너무 어렸잖니. 아무말도 못하고 지내니..그사람은 더욱 밤에 엄마를 건들려고 하고. 그래서 엄마는 옷 핀을 준비했다.
손이 오면. 핀으로 찔렀다. 그렇게 하니 좀 정신을 차리는 ㄴ것 같았다.
아침이 되면. 엄만 그친구 얼굴조차도 쳐다보지 못했는데. 그 사람은 너무 뻔뻔하더라.
그렇게 짐승처럼 살아야 했지. 너무 수치 스럽고. 챙피했어. 아무에게도 말도 못하고.
순진한것이 아니고. 난 바보였어.
늘 참고 속으로 울고. 정말 바보 였던것 같구나.
그리고 우린 생활이 어려워 지니.다시 지방으로 이사를 했고.
그곳에서는 좀 사람답게 사는가 싶었는데. 너의 큰 아빠라는 사람이 와서 괴롭히고.
그래도 엄만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삼천포에서 동현이를 낳았지. 그곳에서 현이가 양수기라는 기계에다. 손가락을 넣어서. 손가락이 구부려 졌는데. 아직도 그것을 고치지 못했다는말 너에게듣고는 엄마가 젤로 마음이 아팠어.
우리 현이 그 손을 고쳐 주어야 했는데. 돈이 없어서 못 고친것이 한이 된다.
하기야 그때는 늘 바닥을 기어 다녔으니. 어쩔수가 없었지.
그렇게 힘들어도. 엄만 형제들이나.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았다.
먹을 것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었지..어느 누구에게 손을 벌리지도 빌리지도 않았단다.
욱아. 현아.
그래서 엄만 이세상에서 너희들에게만 제일 미안하고. 죄을 짓었지.
다른사람에게는 없다.
있다면. 우리 친정아버지란다. 내가 자식으로서 너무 그분의 가슴을 아프게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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